옥책 ()

옥책
옥책
법제·행정
제도
왕실(또는 황실)에서 책봉, 존호 · 시호 · 휘호를 올리거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옥간(玉簡)에 글을 새겨 엮은 문서.
정의
왕실(또는 황실)에서 책봉, 존호 · 시호 · 휘호를 올리거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옥간(玉簡)에 글을 새겨 엮은 문서.
개설

옥책은 책문의 한 종류이다. 책문은 재질에 따라, 옥책(玉冊), 죽책(竹冊), 금책(金冊) 세 종류가 있고, 옥책은 옥색에 따라 흑옥책(黑玉冊), 백옥책(白玉冊), 청옥책(靑玉冊)으로 구분되는데, 청옥책이 가장 일반적이다.

책문은 원칙적으로 피수책자(被授冊者)가 ‘왕실의 승통(承統) 내 인물’일 경우에만 사용되었다. 옥책은 왕비 이상의 신분에 대하여만 사용된 반면, 죽책은 왕세자 이하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그러나 고려에서는 공주, 궁주, 공, 후 등 왕의 친척에 대해 책문이 사용되기도 하였고, 조선에서도 1755년 숙빈최씨시책(죽책)이나 1776년 인빈김씨시책(죽책) 등과 같이 원칙에서 벗어나 왕의 사친에 대해 사용된 사례도 있었다.

내용과 양식

옥책은 피수책자가 왕비 이상이며, 내용에 따라서는 봉책(封冊), 존호책(尊號冊), 시책(諡冊), 휘호책(徽號冊), 애책(哀冊), 축책(祝冊) 등으로 구분된다.

봉책의 책봉문에는 책봉의 배경, 인물의 인적 사항과 평가(칭송), 책봉 선언문, 당부 사항 등이 포함된다. 존호를 올리는 존호책, 시호를 올리는 시책, 휘호를 올리는 휘호책은 호를 올리는 배경, 인물의 인적 사항과 평가, 올리는 호에 대한 설명 등이 주요 내용을 이룬다. 초상 때 제작되는 애책은 사자(死者)를 애도하는 문장이며, 축책의 내용은 종묘에 제사 지낼 때 사용되는 제문이다.

옥책은 제술(製述)─서사(書寫)─회장(繪粧)의 과정을 거쳐 제작되는데, 전체적으로 절첩의 형태로 만든다. 제술과 서사는 각각 옥책문 제술관과 옥책문 서사관이 담당한다. 특히 옥책문은 사륙변려문으로 작성되므로 관각체에 능하면서도 품계가 높은 관원이 담당하였는데, 대제학이 차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회장은 북칠(北漆)─각자(刻字)─전자(塡字)─작첩(作貼)의 각 과정을 전문 공장(工匠)이 담당하였다. 옥책의 규모는 문장의 규모에 따르는데, 1부의 첩수는 2~18첩(짝수첩)이고, 1첩의 간수는 5~8간으로 다양하였다.

고려와 조선의 옥책 양식은 회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고려 옥책은 옥간의 상하에 좌우로 관통하는 구멍을 뚫고 끈으로 연결하여 두루마리처럼 말 수 있게 만들었으므로 조선의 옥책에서 보이는 첩 가장자리 변철이나 첩을 연결하는 돌적이[乭迪耳]나 원환(圓環)이 없다. 특히 처음과 마지막 간을 넓게 만들어 인물상을 새기는 방식은 중국 옥책의 양식을 따른 것이다. 이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146년(의종 즉위년) 「고려인종시책」과 『고려사』의 책문 양식에 관한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현황

옥책은 가장 잦은 빈도로, 가장 오랜 기간 제작된 책문으로, 현존 책문 306건 가운데 258건이 옥책이다. 시대별로는 고려시대 1건, 조선시대 253건, 대한제국기 47건, 일제강점기 4건, 현대(1966) 1건이 있다. 고려시대 옥책은 1146년 의종이 선왕 인종에게 시호 ‘공효(恭孝)’와 묘호 ‘인종(仁宗)’을 함께 올린 시책이다. 조선 전기 책문은 1545년 옥으로 만든 인종시책으로 간 1개만 남아 있다. 내용별로는 봉책 16건, 존호책 185건, 시책 47건, 휘호책 10건이 있고, 소장처별로는 국립고궁박물관에 257건, 국립중앙박물관에 1건이 있다.

의의와 평가

옥책을 포함한 책문은 내용이 인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보다는 권력층의 정치적 상황과 수수자의 인간 관계를 바탕으로 한 주관적인 평가와 칭송 위주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저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책문의 가치는 책문의 제작 배경, 수수자의 신분 관계, 왕실 의례의 특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평가되어야 한다.

책문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한 왕조가 예와 효라는 유교 덕목을 실천하면서 행한 왕실 의례의 산물이며, 동시에 왕실 최고 계층의 신분이나 명예를 직접적으로 증명해 주는 문서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책문은 형태적으로 당대의 문장가와 명필, 최고 수준의 전문 장인이 협업으로 제작한 화려한 왕실 공예품이기도 하다.

이에 더하여 책문의 제작 과정에서 생산된 탁인본과 다양한 종류의 필사본 또한 중요한 문화재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책문의 복합적인 성격을 감안할 때 사료적 가치는 물론 오랜 역사를 지닌 중요 유교 문화 유산으로 평가되기에 충분하다.

참고문헌

「조선시대 책문 연구」(장을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6)
「책문의 필사본에 관한 서지학적 고찰」(장을연, 『서지학보』 33, 2009)
「장서각 소장 책문 탁인본의 현황과 특징」(장을연, 『장서각』 22, 2009)
「조선 후기 왕실의 옥공예장인 연구」(장경희, 『미술사연구』 15, 2001)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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