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왕실에서 책봉, 존호·시호·휘호를 올리거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죽간(竹簡)에 글을 새겨 엮은 문서.
개설
내용과 양식
죽책은 죽간에 글을 새겨 1개 첩으로 엮고, 각 첩을 연결하여 하나의 책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은 제술(製述)─서사(書寫)─회장(繪粧)으로 이루어졌다. 제술과 서사는 각각 죽책문 제술관과 죽책문 서사관이 담당하였다. 특히 죽책문은 사륙변려문으로 작성되므로 관각체에 능하면서도 품계가 높은 관원이 담당하였는데, 대제학이 차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회장은 북칠(北漆)─각자(刻字)─전자(塡字)─작첩(作貼)의 각 과정을 거치는데 모두 전문 공장(工匠)이 담당하였다. 죽책의 규모는 문장의 규모에 따르는데, 1부의 첩수는 2~10첩(짝수첩)이고, 1첩의 간수는 5간 또는 6간이다.
고려의 죽책은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옥책과 마찬가지로 각 간을 끈으로 엮어 두루마리처럼 말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1146년(의종 즉위년) 옥책 「고려인종시책」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다만 이 옥책의 처음과 마지막 첩에 새겨진 인물상이 죽책에도 적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현황
시대별로는 조선시대 40건, 대한제국기 1건이 있고, 내용별로는 봉책 23건, 존호책 7건, 시책 11건이 있다. 소장처별로는 국립고궁박물관에 39건, 고려대학교박물관에 2건이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책문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한 왕조가 예와 효라는 유교 덕목을 실천하면서 행한 왕실 의례의 산물이며, 동시에 왕실 최고 계층의 신분이나 명예를 직접적으로 증명해 주는 문서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책문은 형태적으로 당대의 문장가와 명필, 최고 수준의 전문 장인이 협업으로 제작한 화려한 왕실 공예품이기도 하다. 이에 더하여 책문의 제작 과정에서 생산된 다양한 종류의 필사본 또한 중요한 국가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책문의 복합적인 성격을 감안할 때 사료적 가치는 물론 오랜 역사를 지닌 중요 유교 문화 유산으로 평가되기에 충분하다.
참고문헌
- 「조선시대 책문 연구」(장을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6)
- 「장서각 소장 책문 탁인본의 현황과 특징」(장을연, 『장서각』 22, 2009)
- 「조선시대 왕세자 책봉 죽책 연구」(장을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8)
- 「조선 후기 왕실의 옥공예장인 연구」(장경희, 『미술사연구』 1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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