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황실에서 책봉 때 금편(金片)에 글을 새겨 엮은 문서.
개설
조선의 책문이 ‘승통 내’의 피수책자에 대하여, 왕비 이상에 대해서는 옥책을, 왕세자 이하에 대해서는 죽책을 사용함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황제국이었으므로 피수책자의 범위도 확대되었다. 즉, 승통에 속하는 황후·황태자·황태자비는 물론이고, 그 밖의 친왕·친황비와 황제의 후궁인 귀비와 황귀비에 대해서도 금책이 사용되었다. 다만 그 용도는 책봉으로 제한되었다.
내용과 양식
금책은 두 개의 금편에 글을 새기고, 붉은색 끈으로 엮어 책처럼 접었다 펴는 형태이다. 금책 역시 옥책이나 죽책과 마찬가지로 제술(製述)─서사(書寫)─회장(繪粧)으로 이루어지며, 제술과 서사는 금책문 제술관과 금책문 서사관이 담당하였다. 회장은 북칠(北漆)─각자(刻字)─전자(塡字)─작첩(作貼)의 각 과정을 전문 공장(工匠)이 담당하였다. 금책의 규모는 문장의 규모에 관계 없이 2개 금편으로만 제작되었는데, 1개 금편의 행수는 4~7행, 1개 행의 글자 수는 11~19자이다.
금책은 글자 면에 붉은색 안료인 당주홍(唐朱紅)을 채웠다. 또 뒷면을 붉은색 비단으로 배접하고, 상하좌우 4변의 가장자리에 문양을 새겼다. 문양은 피수책자의 신분에 따라 구분되는데, 초룡(草龍)은 황후, 황태자, 황태자비 책봉 금책(7건)에, 쌍적(雙翟)은 황귀비 책봉 금책(2건)에, 반이(蟠螭)는 왕(친왕)과 왕비(친왕비) 금책(6건)에 새겼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조선시대 책문 연구」(장을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6)
- 「대한제국기 금책의 현황과 양식적 특징」(장을연, 『고문서연구』 46, 2015)
- 「조선 후기 왕실의 옥공예장인 연구」(장경희, 『미술사연구』 15, 2001)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