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주 아문 및 동헌

  • 예술·체육
  • 역사
  • 제도
  • 조선 후기
  • 시도문화유산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조선후기 온양군의 관청.
제도/관청
  • 설치 시기1871년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강승 (국립부여박물관, 고고학)
  • 최종수정 2026년 04월 14일
아산 온주아문 미디어 정보

아산 온주아문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조선후기 온양군의 관청.

내용

문루의 크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翼工系) 팔작지붕 건물. 동헌의 크기 정면 6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건물. 1973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문루에는 ‘溫州衙門(온주아문)’ 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1.5m 높이의 사각뿔 모양 주춧돌을 세우고 그 위에 2층까지 이어지는 둥근기둥[圓柱]을 세운 뒤 마루틀을 짜고 그 둘레에 계자난간(鷄子欄干)을 설치하였다.

기둥머리에 창방(昌枋)을 짜맞추고 2익공(二翼工)을 배열하였으며,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는 초각(草刻)한 화반(花盤)을 가운데칸에는 3개, 양옆칸에는 2개씩 놓았다. 지붕의 가구(架構)는 기둥 사이에 대들보를 걸고 그 위에 뜬창방을 가설하여 내목도리를 받치게 하였다.

창방 위에는 기둥머리 모양의 받침목을 놓아 마루보를 받쳤으며, 그 위에 파련대공(波蓮臺工)을 놓았다. 한편, 합각 부분 아래에는 충량[衝樑 : 한끝은 기둥에 짜이고 다른 끝은 들보에 걸치게 된 측면의 보]을 걸친 다음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동헌은 아문에서 약 50m 북쪽에 서 있다.

조선시대 온양군 동헌으로 쓰이다가 1928년 일제의 주재소, 해방후에는 파출소로, 또 1986년 시(市) 승격에 따라 1988년까지 온주동 동사무소로 2년간 사용되다가 1993년에 수리 복원하였다.

아문은 1871년(고종 8)에 중건된 건물이며 동헌은 여러 차례 변형되었으니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건물인 듯하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온양군 공해조(公廨條)에는 동헌 10칸, 아사(衙舍) 23칸, 객사(客舍) 37칸, 무학당(武學堂) 3칸, 향청(鄕廳) 12칸 등 건물이름과 칸수가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2동의 건물만 남아 있다.

참고문헌

  • - 『문화재대관』(충청남도, 1996)

  • - 「아문건축의 양식에 관한 연구: 충청지방의 아문을 중심으로」(박만식·이달훈,『백제연구』16, 충남대학교백제연구소, 198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