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석주관전투에서 항쟁하다 순국하여 석주관칠의사(石柱關七義士)로 불린 의병.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의병을 이끌고 하동과 구례 사이의 통로 가운데 요새지인 석주관(石柱關)에서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큰 타격을 입혔으나, 왜군과의 교전 중에 전사하였다.
곧 이어 아들 왕의성(王義成)이 이정익(李政翼)·한호성(韓好誠)·양응록(梁應祿)·고정철(高貞喆)·오종(吳琮) 등과 함께 다시 석주관에서 적을 맞아 항전하다가 죽음으로써, 이들과 함께 세칭 석주관칠의사(石柱關七義士)라 불리고 있다.
1804년(순조 4)에 조봉대부(朝奉大夫)·지평(持平)을 증직받았고, 1813년에는 정려가 세워졌으며, 1868년(고종 5)에는 석주관에 위패를 봉안하여 칠의단(七義壇)이라 명명하였다.
참고문헌
-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 『구례읍지(求禮邑誌)』
- 『내고장전통가꾸기』(구례군,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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