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 박사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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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왕인 박사 유적
왕인 박사 유적
고대사
유적
국가유산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학자 왕인 관련 탄생지.
시도자연유산
지정 명칭
왕인박사유적(王仁博士遺蹟)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지정기관
전라남도
종목
전라남도 시도기념물(1976년 09월 30일 지정)
소재지
전남 영암군 군서면 왕인로 440 (동구림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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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학자 왕인 관련 탄생지.
내용

1976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군서면의 구림 삼거리에서 월출산 주지봉을 향해 올라가면 해발 350m 되는 곳에 왕인이 출생했다는 성기골과 수학했다는 문산재(文山齋)가 있다.

이 밖에도 왕인이 공부했다는 책굴(冊窟)과, 일본으로 건너간 뒤 후대인들이 그를 기려 새겼다는 높이 2.57m의 석인상(石人像)이 있다. 이 계곡을 흐르는 물을 성천이라 하며, 지금도 바위에 성천이라 새겨진 명문이 있다.

또한, 군서면 서구림리 상대마을에 있는 상대포는 당시 중국과 일본을 잇는 국제항이었는데, 왕인은 이 곳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간척지가 되어 농지로 변형되어 옛 자취를 찾아볼 수가 없다.

왕인은 백제가 낳은 대학자이다. 일본 오진왕[應神王]의 초빙을 받아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 태자의 사부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 조정의 사람들에게 학문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데리고 간 기술자를 통해 여러 가지 기술도 전했다고 한다.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따르면, 일본에서 왕인은 고대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한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 유적은 1975년에 왕인박사유적현장회가 주선해 왕인박사 탄생지라는 유허비를 건립하였다.

그리고 1985년부터 1987년 사이에 국책사업으로 사당과 내삼문, 외삼문, 유물전시관 등을 건립하였다. 또한 주지봉 산록에 문산재와 양사재 등도 새로 복원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부 학술적 고증이 소홀했다는 지적도 있다.

참고문헌

『백제왕인박사사적연구』(한국교원대학교 박물관·영암군, 1995)
『문화재도록-도지정문화재편-』(전라남도, 1992)
『영암군의 문화유적』(목포대학박물관,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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