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군서면의 구림 삼거리에서 월출산 주지봉을 향해 올라가면 해발 350m 되는 곳에 왕인이 출생했다는 성기골과 수학했다는 문산재(文山齋)가 있다.
이 밖에도 왕인이 공부했다는 책굴(冊窟)과, 일본으로 건너간 뒤 후대인들이 그를 기려 새겼다는 높이 2.57m의 석인상(石人像)이 있다. 이 계곡을 흐르는 물을 성천이라 하며, 지금도 바위에 성천이라 새겨진 명문이 있다.
또한, 군서면 서구림리 상대마을에 있는 상대포는 당시 중국과 일본을 잇는 국제항이었는데, 왕인은 이 곳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간척지가 되어 농지로 변형되어 옛 자취를 찾아볼 수가 없다.
왕인은 백제가 낳은 대학자이다. 일본 오진왕[應神王]의 초빙을 받아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 태자의 사부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 조정의 사람들에게 학문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데리고 간 기술자를 통해 여러 가지 기술도 전했다고 한다.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따르면, 일본에서 왕인은 고대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한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 유적은 1975년에 왕인박사유적현장회가 주선해 왕인박사 탄생지라는 유허비를 건립하였다.
그리고 1985년부터 1987년 사이에 국책사업으로 사당과 내삼문, 외삼문, 유물전시관 등을 건립하였다. 또한 주지봉 산록에 문산재와 양사재 등도 새로 복원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부 학술적 고증이 소홀했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