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주여진(建州女眞) 반란의 토벌 원군으로 참전하여 전공을 세운 김응하의 묘정비로,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에 위치한다. 1985년 9월 13일에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철원군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김응하(金應河, 1580~1619)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철원 출신이다. 25세 때 무과에 급제한 후 변방의 군직을 거쳐 선천군수(宣川郡守)를 역임하였다. 누르하치를 중심으로 건주위(建州衛)가 반란을 일으키자, 명나라에서 조선에 원군을 요청했는데, 1618년(광해군 10) 좌영장으로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으나 이듬해 3월 전사하였다. 이에 명(明)에서는 ‘요동백(遼東伯)’으로 추증하였으며, 조선에서도 영의정으로 추증하고 시호를 충무(忠武)라고 하였다. 1665년(현종 6) 철원에 사당이 건립되었고, 1668년(현종 9)에 ‘포충사(褒忠祠)’로 사액(賜額)되었다.
포충사는 6·25 때 묘비(廟碑)를 제외하고 모두 소실되었다. 1974년에 묘비를 3군영내(三軍營內)로 이전했다가, 1984년 다시 현재 위치로 옮겼다. 비의 총 높이는 3.89m이며, 비신은 오석(烏石)으로 크기는 96㎝×215㎝×32㎝이다. 비문은 전 · 후면에 모두 새겨져 있으며,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박태유(朴泰維)가 글씨를 썼으며,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 전서로 제액(題額)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