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3책. 목활자본. 1901년 8대손 규환(奎煥)이 유문을 수집하여 간행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그뒤 1911년 9대손 윤현(允鉉)·인현(寅鉉) 등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정내석(鄭來錫)의 서문이, 권말에 장석영(張錫英)과 후손 인현·윤현 등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부(賦) 4편, 시 101수, 권2에 시 165수, 권3에 교서 1편, 소(疏) 2편, 차(箚) 2편, 계(啓) 5편, 연설(筵說) 3편, 책(策) 1편, 권4에 서(書) 11편, 서(序) 4편, 논(論) 3편, 제문 3편, 행장 1편, 권5∼7에 부록으로 연보, 증시(贈詩) 5수, 조천별장(朝天別章), 서(書), 만사 7편, 제문 2편, 행장, 유사, 신도비명, 묘지명, 봉안문, 상향축문, 청증시상언(請贈諡上言), 부청시상언(復請諡上言)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1591년(선조 24)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중국에 갔다 오면서 여정과 감회를 읊은 시가 상당수 있다.
소에는 1594년 일본과 화의를 체결하는 것에 반대하는 「척호남백청화소(斥湖南伯請和疏)」, 광해군 때의 폐모론을 반박한 「만언소(萬言疏)」가 있다. 차는 사직하는 내용, 당시의 학풍을 비판하면서 성균관에 학제를 세울 것을 주장한 글 등이 있다. 책은 「의국책(醫國策)」으로,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하여 조정을 바로잡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서(書)는 당대의 유명한 문신인 이원익(李元翼)·유영경(柳永慶)·정구(鄭逑)·남이공(南以恭) 등과 주고받은 것으로, 국정에 관한 내용이 많다. 서(序)에는 향음례에 관한 글이 있고, 논에는 상례에 대해 논한 글이 있다.
부록의 증시와 서는 노수신(盧守愼)·한준겸(韓浚謙)·정구 등이 저자를 위해 지은 것들이다. 조선 중기의 정치사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