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사람으로 공부시랑(工部侍郞) 이품언(李稟焉)의 딸이며, 덕종의 제4비 이씨(李氏)와 자매간이다.
처음에 호를 창성궁주(昌盛宮主)라고 하였다. 정종과의 사이에 공주를 낳았으나, 1057년(문종 11)에 죽었으므로 시호를 도애(悼哀)라고 하였다. 이품언의 관직이 정4품직에 불과하고 관계 기록도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보아 두드러진 정치활동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두 딸이 연이어 왕의 후비가 되었으며 용목왕후는 왕후의 책봉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가문의 배경을 가졌거나, 혹은 자매의 미모가 뛰어나 왕실과 밀착될 수 있는 조건이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