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단양(丹陽). 농학자 우장춘(禹長春)의 아버지이다.
1881년(고종 18) 별기군(別技軍)의 참령관(參領官)이 되면서 개화정책에 눈을 떠 개화파에 가담하였다. 1894년 8월 장위영영관(壯衛營領官)으로서 군국기무처 의원에 임명되었다.
1895년 을미사변 때 훈련대 제2대대장으로 휘하 장병을 이끌고 일본군 수비대와 함께 궁궐에 침입, 명성황후의 시해를 방조하였다. 이로 인하여 체포령이 내려져 일시 피신하기도 하였다.
이듬해 아관파천으로 정국이 일변하여 신변이 위태로워지자 일본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일본에 망명하였다. 동경에 거주하며 일본 여성 사카이[酒井]와 결혼하여 재기를 꿈꾸던 중 1903년 12월 본국에서 파견된 자객 고영근(高永根)에게 암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