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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 우표(1884년)
조선국 우표(18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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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물에 첨부하여 우편요금을 납부하였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정부 또는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기관이 발행하는 증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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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우편물에 첨부하여 우편요금을 납부하였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정부 또는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기관이 발행하는 증표.
내용

현재와 같은 우표가 고안되기 이전에도 유사한 것이 행하여진 사례가 있었으나, 주로 우편요금을 우편물 발신인이 현금으로 지불하거나 수취인으로부터 징수하는 것이 상례였다.

우표가 생긴 뒤에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지 우편물에 우표를 붙여서 우체통에 넣거나 우체국의 창구에 제출하면 우편물은 수취인에게 배달된다. 거리에 관계없이 일정한 요금제도가 특지이다.

세계 최초의 우표는 영국에서 요금전납(料金前納)·전국 균일요금의 원칙에 의한 근대우편제도의 창설과 더불어 1840년 5월 1일에 발행된 1페니 우표에서 시작되었다. 우표의 사용이 근대우편의 핵심적인 성격의 하나인 만큼 우리 나라에서도 우정총국의 근대우정에서 우표의 준비는 매우 중요한 사업으로 되었다.

우정총국의 개국과 함께 맨 처음 발행된 우표는 5종의 문위우표(文位郵票)였다. 문위우표는 우리 나라 최초의 우표로서 다른 여러 나라의 예와 같이 여러 가지 난해한 점을 가지고 있는 우표이다.

이 우표는 액면 금액이 당시의 통용화폐단위인 ‘문(文)’으로 표시되어 있어 문위우표라고 불리고 있는데, 이 최초의 우표가 발행된 성문상(成文上)의 근거는 1884년에 제정한 <우정규칙> 제27조의 “우정초표는 본국에서 발행한다.”는 규정에 의한 것이었다.

액면은 5문·10문·25문·50·100문의 5종이며, 발행연월일은 1884년 10월 1일(양력 11월 18일)이었다. 또한, 이 5종의 우표 전부가 그 날 발행된 것이 아니고 5문과 10문만이 우정총국 개국 전에 인쇄국인 일본에서 도착하여 먼저 발매되었고, 25문·50문·100문의 3종은 우정총국이 폐지된 뒤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결국 미발행에 그쳤다.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우표를 제조할만한 시설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아 일본에 위탁하여 대장성 인쇄국에서 제조하였다. 명판(銘版), 즉 우표전지의 주위 여백지에 표시한 인쇄처명은 ‘대일본국정부 대장성 인쇄국 제조’라고 되어 있다. 원도(原圖) 작자는 일본인 사이토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구 원도와는 다른 별개의 원도가 준비되어 있었다.

인쇄판식은 100문은 2색, 그 밖의 4종은 단색인쇄인 전태식 제판에 의한 동판인쇄(銅版印刷)이며, 인면에 표시된 국호는 ‘대조선국’·‘ᄃᆡ죠션국’, 우표라는 용어는 ‘우초’라고 하였으며, 5문을 제외한 4종에는 ‘COREAN POST’라는 영문자도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갑신정변으로 우정업무가 중단되어 우표의 실질적 사용도 중단되었다. 이후 우편업무의 재개와 더불어 1895년 태극우표를 미국에서 인쇄하여 발행하였다. 이 우표는 액면에 따라 5문·1돈·2돈5푼·5돈 등 4종류로 네 귀퉁이에는 오얏꽃[李花]무늬를 그려넣었으며, 그 한복판에는 태극기를 인쇄하였다.

또, 태극도안 바로 위에는 ‘KOREA’, 그 밑에는 ‘5POON', 양옆에는 ’5푼, 五分‘이라고 인쇄하였으며, 우표의 상단에는 ‘朝鮮郵票’, 하단에는 ‘죠션우표’라고 인쇄하였다. 이 우표가 최초우표인 문위우표와 다른 점은 ‘죠션우표’로 ‘대’자가 빠졌고, ‘우초’ 대신 ‘우표’라고 고쳐진 점 등이다.

그 뒤 국호가 대한제국으로 바뀜에 따라 농상공부는 1897년 10월 14일 ‘大韓’과 ‘ᄃᆡ한’을 태극우표에 빨강색으로 가쇄(假刷)한 가쇄우표를 발행한 데 이어 1900년에는 흑색으로 가쇄를 하였다.

대한제국의 농상공부 인쇄국은 1900년 1월 15일 2전짜리를 발행한 데 이어 1900년 1월 7월 5일부터 1901년 1월 15일까지 2리(厘)에서 2원에 이르는 13종의 우표를 국내에서 발행하였다.

이 우표들은 이왕가의 문장꽃인 오얏꽃과 태극이 주도안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화우표라 하며, 문위우표(23×26mm)나 태극우표(22×26mm)보다 작기 때문에(18.5×22mm)소형우표라고 해서 ‘이화소형우표’라고 불렀다.

1902에는 고종황제의 어극(御極) 4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우표를 최초로 전환국(典圜局) 인쇄로 발행하였다. 그러나 1905년 한국의 통신권이 일본에 강탈당함으로써 우표의 발행이 정지되고,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우표가 한국에서 통용되었다. 1884∼1905년 사이에 우리 나라에서 발행된 우표는 보통우표 54종, 기념우표 1종, 합계 55종이었다.

광복 후 미군정하에서도 일본우표가 잠정적으로 사용되었으나, 1946년 2월 1일에 이르러 일본우표에 ‘조선우표’ 및 액면을 개정 가쇄한 잠용가쇄 보통우표를 발행하였으며, 1946년 5월 1일에 최초의 우표인 해방조선기념우표가 일본에서 인쇄되어 정쇄우표(正刷郵票)로 발행되었다.

1946년 8월 15일에 이르러 광복1주년 기념우표가 서울 정교사(精巧社)에서 인쇄되어 발행되었는데, 이후의 모든 우표가 국내에서 인쇄되는 실마리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정부의 이름으로 우표가 발행된 것은 1948년 8월 1일에 이르러 ‘대한민국우표’로 표시되면서 비롯되었다.

우표의 종류는 보통우표와 특수우표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보통우표는 우편요금납부의 증표로서 언제나 발매되고 있으며, 수요에 따라 제한 없이 발행된다. 보통우표는 항공우편의 요금납부용으로 쓰이는 항공우표와 그렇지 않은 통상우표로 구분되기도 한다.

나라에 따라서는 속달전용우표·등기전용우표·소포전용우표·신문전용우표·인쇄물전용우표와 같이 그 용도를 정하여 발행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나라의 보통우표는 그간 사실적인 방법에 의한 도안만을 가지고 여러 가지 소재로 발행되었고, 사용기간도 10년·5년 이상 등 통일되어 있지 않았으며, 거의 전종이 소형으로 2색도였다.

특수우표는 특수목적을 위하여 발행되는 우표로서, 기념우표(국가적으로 특별히 기념하기 위하여 일정량을 정하여 발행하는 우표)·첨가우표(자선 또는 공공사업 등의 기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일정금액을 가산하여 발행하는 우표)·특별우표(어떤 목적을 위하여 그 취지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발행하는 우표)로 나눌 수 있다.

우표의 부분명칭은 인면(우표 중 도안이 인쇄되어 있는 부분)·마진(우표의 인면을 제외한 여백)·부출(도안의 일부가 부각된 것과 같이 강하게 인쇄된 것)·명판(우표의 인면 밑의 마진이나 시트의 마진에 인쇄국명 등을 인쇄한 것)·상소(소인이 우표 한구석에 깨끗하게 찍혀 있는 것)·모지(색이 있는 털과 같은 것을 종이 속에 넣어 우표의 위조를 막을 수 있도록 제조된 우표용지)·시크리트마크(위조우표를 막기 위하여 우표의 도안 중 어디엔가에 감춰넣은 문자나 마크)·투문(우표의 위조를 막기 위하여 우표지를 투시해볼 때 나타나는 무늬)·천공(우표를 한 장씩 떼어내기 쉽게 하기 위하여 동그랗게 바늘구멍을 뚫어놓은 것) 등이 있다.

구멍모양이 원이 아니고 길쭉길쭉한 것을 선공(線孔)이라고 하며, 타원형인 것을 룰레트라고 한다. 또, 기계의 고장으로 천공이 일정하지 않은 것을 천공부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프레임(우표의 가장자리 부분을 장식한 도안)으로 되어 있다.

우표의 발행은 본래 우편요금 납부의 증표로서 고안된 것이지만, 근년에는 많은 우편물에 첨부되어 세계 각지로 운반되어 많은 사람의 눈에 띄게 되므로, 모든 나라가 그 도안·인쇄기술에 최선을 다하여 제조하여 광범한 선전목적에 활용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우표는 정보통신부가 발행하며, 그 인쇄는 한국조폐공사가 한다. 새 우표를 발행할 때는 먼저 우표발행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각 부처, 산하기관 및 사회 단체 등에 자료제출을 의뢰하고, 정보통신부 자체에서도 관계자료를 수집한다. 수집된 자료는 대학 교수·우표 수집가 및 전문가로 구성된 우표심의회의를 개최하여 심의, 결정한다.

결정된 안은 우표디자인실에서 여러 가지 참고자료를 검토하여 도안을 작성하고, 디자인전문위원의 심의를 거쳐 인쇄용 원도를 작성한다. 작성된 원도는 한국조폐공사에 넘겨져 시쇄우표(試刷郵票, 견양권)를 인쇄하여 정보통신부에 보낸다.

정보통신부에서는 견양권을 세밀히 검사하여 최종결정을 한 뒤 채택된 견양을 한국조폐공사에 통보한다. 한국조폐공사에서는 그 견양권에 의거하여 그라비어 또는 오목판 기계로 인쇄하며, 인쇄된 우표는 정밀검사를 거쳐 포장하여 정보통신부에 납품된다.

우표 발행이 시작되면서 우표 수집의 취미활동도 시작되었으나, 누구에 의하여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컬렉션(수집)을 만든다는 착안을 한 사람은 아일랜드의 인지세수납관 바크인데, 그는 1774년에 자기나라에서 발행된 수입인지를 모았다.

또 1840년경 프랑스의 베첼은 우표가 발행되자 곧 수집을 시작하여 1840년 5월 6일 이후 수집한 우표를 노트에 붙여 보존하였다고 한다. 우표수집취미는 영국에서보다 유럽대륙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우표 수집은 크게 나누어 목록수집과 주제수집 및 기타수집으로 분류된다. 목록수집은 이미 나온 목록을 기준으로 하거나 참고로 하여 우표를 정리하는 것으로 전통적이라고 해서 클래식이라고도 하는데, 일반수집·전문수집·연구수집이 있다.

주제수집은 우표의 도안에 관심을 집중하여 그림별로 이를 추적하거나, 주제를 선정하고 이를 작품화하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우표를 자유롭게 사용하여 가지가지 작품활동을 하는 가장 실제적이고 현대적인 수집으로 아직도 발전중에 있는 수집방법이다.

또, 표제수집과 주제수집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우표를 모두 수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목표를 정하여 수집내용의 충실을 기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참고문헌

『구한국시대의 우표와 우정』(진기홍, 1964)
『한국우정100년사』(체신부, 1984)
집필자
진용옥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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