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4년(숙종 20) 김용의 현손 김창석(金昌錫) 등에 의해 편집·간행되었다. 1881년(고종 18) 판본이 소실되자 1898년에 중간하였다. 그 뒤 1906년에 10대손 김서락(金瑞洛)이 편집한 속집 1권, 친필일기초(親筆日記草)인 호종일기(보물, 1968년 지정), 다른 문헌에서 수집한 언행록과 만제(輓祭) 등을 묶어 1977년에 원집과 함께 1책으로 영인·출간하였다. 권두에 권해(權瑎)의 서문이 있고, 발문은 없다.
본집 5권 3책, 부록 2권 1책, 합 7권 4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시 396수, 부 2편, 권3에 소 1편, 서(書) 5편, 잡저 1편, 서(序) 2편, 교서 1편, 전(箋) 2편, 상량문 2편, 권4·5에 제문 28편, 묘갈명 2편, 묘지명 3편, 언행록 1편, 부록 2권에 세계도·연보·행장·지문·묘갈명·제문·봉안문·만사·유묵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는 주로 시사(時事)에 관한 문답이 대부분이다. 「상선혜청당상서(上宣惠廳堂上書)」는 저자가 여주목사로 재직시에 퇴락한 청심루(淸心樓)의 중건을 건의한 내용이다. 잡저의 「모병문(募兵文)」은 임진왜란 때 안동수성장(安東守城將)으로 임명된 저자가 의병을 모집하기 위해 도내 각 읍에 보낸 격문(檄文)으로, 저자의 우국충정이 담긴 명문이다.
제문에는 기우문(祈雨文)·봉안문·고사를 비롯해 정탁(鄭琢)·조목(趙穆)·유성룡(柳成龍) 등 명현에게 바친 제문도 있다. 저자의 생전에 일찍 죽은 네 아들의 제사에 바친 제문은 부자의 정을 애절하게 그리고 있다.
「제숙부학봉선생문(祭叔父鶴峯先生文)」은 초유사(招諭使)로 진주에서 순국한 숙부이며 스승인 김성일(金誠一)의 1주기 소상(小祥) 때 올린 제문이다. 자신이 초상(初喪)·장사(葬事) 때 국사에 얽매여 분상(奔喪)하지 못한 절통한 심사와 김성일의 덕행 및 공사(公私)의 사정을 서술하고 있다. 「숙부학봉선생언행록(叔父鶴峯先生言行錄)」은 김성일의 생애·덕행 외에도, 임진왜란에 관계되는 기술이 매우 많아 당시의 사정과 임진왜란에 관한 연구에 사료적 가치가 많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