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은 성재산과 백암산 등 마식령산줄기의 영향으로 높고 험준하다. 동쪽으로 오면서 낮아져 시루봉 · 장덕산(長德山) · 여왕봉(女王峰) 등의 낮은 산지가 구릉성 산지를 이루다가 동해와 접하는 곳에 이르러서는 평지가 발달하였다. 성재산에서는 장림천(長林川)과 적전천(赤田川) 두 개의 하천이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간다. 남쪽으로는 남대천(南大川) 하류 연안에 안변평야(安邊平野)가 형성되어 있다.
경지는 전체 면적의 18%이며, 논은 28.1%를 차지한다. 주민들은 벼와 옥수수 재배에 주로 종사한다. 시 근교에서는 채소 재배가 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서남쪽의 밭과 과수원에서는 사과와 복숭아 등이 경작된다.
영흥만 안팎으로는 크고 작은 20여 개의 섬들이 있다. 대표적인 섬으로는 신도(薪島) · 송도(松島) · 웅도(熊島) · 여도(麗島) · 황토도(黃土島) · 장덕도(長德島) 등이 있으며, 섬의 총면적은 3.73㎢이다. 이 섬들은 갈마반도와 함께 이 지역의 자연적인 방파제 역할을 한다. 이에 따라 원산항은 항구로서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천정군(泉井郡)이 자리 잡았던 곳으로, 어을매라고도 불렸다. 고려 초기에는 용주(湧州)라고 불리다가 그 후 의주(宜州)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1413년(태종 13) 의천군(宜川郡)으로 개칭되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1432년(세종 14) 당시 군의 호구는 303호 850명이었다고 한다. 1437년 덕원부(德源府)로 승격되었고, 8년 후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1759년(영조 35) 부의 호구는 2,080호 8,236명이었다. 1895년 지방관제를 개혁해 부군제를 실시함에 따라 덕원군으로 개편되어 함흥부에 소속되었다. 1년 뒤인 1896년 전국을 13도로 개편함에 따라 함경남도 소속이 되었다.
한편, ‘원산’이라는 지명은 영흥만에 위치한 덕원군의 ‘원산진(元山津)’에서 유래하였다. 『여지도서』에는 “관아의 동남쪽 15리 지적에 있는 원산은 동북쪽으로 호수와 바다를 끼고 있는 큰길이며, 민가가 많고 큰 배들이 나루를 가득 메우며 물자를 유통하는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재물이 풍부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초나라의 동정호, 송나라의 서호에 비유하고 있다.
러시아 군함이 일찍이 원산진 앞바다에 정박해 조선 정부에 통상과 거주지를 요구하다가 대원군의 거절로 돌아간 일이 있었다. 1878년 4월에는 일본이 영흥만에 들어와 덕원부 연안의 해안 측량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 일본의 요구로 원산개항예약(元山開港豫約) 7조를 의정하였다. 이에 따라 1880년 7월 정식으로 개항이 이루어져 원산진에 일본영사관이 설치되고 일본인이 살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원산의 일본인 인구는 1885년 235명에서 1895년 1,362명, 1903년 1,946명, 1906년 5,120명까지 이르렀다.
일본인 거류지 북쪽에는 청국 조계지가 있었다. 면적은 9,191㎟로, 일본인 거류지와는 산등성이로 격리되어 있었다. 지리적으로 일본에 비해 상업 활동에 유리했기 때문에 무역 활동에 있어서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청국 조계지 화교 수도 1884년 64명에서 1912년 328명까지 크게 늘어났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20세기 초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채색 필사본의 『원산지도』에는 일본 조계지와 청국 조계지 등이 그려져 있다.
을사조약 후 원산에 이사청(理事廳)이 설치되었고, 1910년 10월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원산부(元山府)로 개칭되었다. 1945년 광복 후 시로 승격되었다. 1946년 북한 관할 강원도로 편입되었으며, 이관되면서 강원도 도 소재지가되 되었다. 1961년 3월 송화동 · 중동 · 용교동 · 포하동 등 4개 동이 폐지되고, 봉춘동 · 해방동 · 원석동 · 삼봉동 · 남산동 · 율동 · 덕산동 · 복막동 등 8개 동이 신설되었으며, 장흥리를 장흥동으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12월에는 문천군의 부운리 · 덕원리 · 석원리 · 장림리 등 4개 리를 원산시에 편입하였다.
1967년 7월에는 철산동 · 춘성동 · 장덕동 · 부운리 등 4개 동 · 리를 폐지하고, 해방동은 해방1·2동으로 분리하였다. 1972년에는 문천군의 문천읍과 가은노동자구 그리고 16개 리가 원산시로 편입되었으며, 문천읍이 문천 · 성문노동자구로 개편되었다. 1974년 1월 노동자구가 모두 동으로 개칭되었고, 1974년 5월에는 천내군의 석전리 · 덕흥리가 원산시로 편입되었다. 1976년에 19개 리 · 동이 다시 문천군으로 이관되었다. 1982년 10월에는 장산동 · 탑동이 신설되면서 초하동 · 장흥동 · 고능동 · 덕원리가 폐지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행정구역 개편을 거쳤으며, 2008년 현재 45동 14리를 관할하고 있다. 인구는 36만 3,127명이다.
중평동에 1953∼1957년에 여러 차례에 걸쳐 발굴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산포지가 있다. 용천리 남대천 하구와 접하는 구릉 위에는 고려 현종 연간에 축성했다는 진명성(鎭溟城) 터가 남아 있다. 용주동에는 태조의 증조부 익조의 탄생지에 세운 성허지비각(聖墟之碑閣)이 있다. 조선왕조의 첫 기틀을 다진 곳이라고 하여 함경도관찰사 정민시(鄭民始)가 조정의 명을 받아 건립한 것으로 전한다.
중청동 산정에는 발산봉수대(拔山烽燧臺)를 비롯해 여러 개의 봉수지가 있고, 산정 주변으로 크고 작은 성지와 성곽들이 산맥을 따라 산재해 있다. 그 밖에 당중동에는 안양사(安養寺) 터가 있으며, 성라동에는 이성계(李成桂)의 소년 시절 승마 단련장이었던 치마대(馳馬臺) 등이 있다. 또 안변군과의 경계인 와우동 계곡에는 조선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능인 고릉(古陵)이 있고, 덕원과 경계를 이루는 곳에는 장림사(長林寺) · 무달사(武達寺) 등이 있다.
조선 초에는 향교가 지역의 유학 교육을 담당하였고, 1695년(숙종 21) 용진서원(龍津書院)이 설립되었다. 개항 이후 일본인이 원산에 많이 거주함에 따라 신교육이 일찍부터 활발해졌고, 그 결과 1926년 용동에 제일공립보통학교, 신흥동에 제이공립보통학교가 신설되었다. 사립학교는 기독교에서 운영하는 보광중학교(保光中學校)와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 진성학교(進誠學校) · 해성학교(海星學校) · 광명학교(光明學校) 등이 있었다.
한편, 1880년 4월 일본 상인들이 상업 활동을 시작하자, 덕원과 원산의 조선인들은 외국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세대에게 신지식을 교육하기를 희망하였다. 그리하여 1883년 1월 새로 부임해 온 덕원부사 겸 원산감리 정현석(鄭顯奭)에게 근대 학교를 설립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 결과가 한국 최초의 근대학교로 알려진 배재학당보다 2년 앞서 설립된 원산학사(元山學舍)이다. 원산학사는 한국 최초의 근대학교이자 근대 최초의 민립학교로, 한국 근대사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개항 이후 개항장에서 조선인 스스로 설립한 원산학사는 원산소학교, 원산보통학교, 원산제일국민학교로 1945년까지 유지되었다.
현재 원산시에는 경제, 농수산, 공업,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대학이 있다. 원산시 세길동에 있는 정준택원산경제대학(鄭俊澤元山經濟大學)은 1960년 원산경제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고, 계획경제학부, 자재공급 및 노동행정학부 등 여러 학부와 수십 개의 강좌가 개설되어 있다. 금강대학(金剛大學)은 1949년부터 강원도 내의 중학교 교원을 양성하고 있는 5년제 사범대학이고, 이수덕원산교원대학(李壽德元山敎員大學)은 초등학교와 유치원 교사들을 양성하기 위한 사범교육 기관이다.
원산수산대학(元山水産大學)은 전문 실습 위주의 기술자를 종합적으로 양성하는 기술대학으로, 1959년 원산농업대학 수산학부로 시작하였다. 원산공산대학(元山共産大學)은 조선노동당이 지방 간부를 양성하는 기관이자 초급 간부들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1947년부터 정치대학 체제를 갖추었다. 이 외에도 원산시에는 원산해방인민학교, 원산기술대학교, 조군실원산공업대학, 원산중등학원, 원산기술대학, 원산명석인민학교, 조근실전자자동차전문학교, 원산의학대학 등이 있다.
원산시는 예로부터 최고의 관광지였던 금강산권에 인접해 있는 곳이자 동해와 접해 있어 국제적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다. 명사십리해수욕장 · 송도원유원지 · 송도원국제관광호텔 · 송도원국제소년야영소가 있으며, 명사십리는 북한 천연기념물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1962년에 개관한 원산동물원은 휴양지의 특성과 바다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바다의 포유류와 수족관 민물 어류를 종합적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
원산은 19세기 말 부산 · 제물포와 함께 일본에 의해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개항장이 된 지역으로, 항구 · 상업 · 교통 도시로서의 지리적 강점을 지니고 있다. 영흥만은 북부의 송전만과 남부의 덕원만으로 나뉘는데, 원산항은 덕원만에 자리 잡고 있다. 항구는 수심이 깊고 지형상 한류와 난류의 풍부한 어족 · 어군(漁群)이 모여드는 곳으로, 높은 어획량를 올리고 있다. 주요 어류는 삼치 · 방어 · 명태 · 대구 · 가자미 · 고등어 · 게 등이며, 오늘날에는 대규모의 굴 양식도 함께 하고 있다.
원산항은 고성을 비롯한 동해안의 화물 및 여객을 운반하는 무역항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원산항은 국제무역항으로서 1만t급 선박 3척이 동시에 접안 가능하고, 1일 하역 능력은 2만t에 달한다. 일본을 출입하는 만경호도 원산항에서 출항한다. 그리고 1978년 개통된 북한 내 유일한 횡축 고속도로인 평양원산 간 고속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평양원산 간 고속도로는 평양남포 간 고속도로와 함께 북한에서 가장 빨리 개통된 고속도로이다. 또한 원산금강산 간 고속도로도 개통되어 있으며, 그 밖에 함흥 · 통천 · 고성 · 고산 등 인접 시군과 연결되는 도로망이 발달해 있다. 철도로는 강원선[고원∼평강]이 통과하고 있다. 이렇듯 원산시는 북한의 남과 북, 동과 서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의 중심지이다.
현재 강원도 최대의 공업지역인 원산시는 수송기계 · 농기계 · 조선공업이 발달하였다. 중공업 부문에서는 1만t급 대형 선박을 건조하는 원산조선소, 북한 지역 최대의 화차 생산 공장으로서 60t급 화차 ·125t급 하개식 화차 · 유조차 · 시멘트차 · 냉동차 등 특수 차량을 제작하는 6·4차량연합기업소와 충성트랙터공장 · 원산기계공장 · 문평제련소 · 원산화학공장 · 원산합성고무공장 · 원산판유리공장 · 원산전산공장 등이 있다. 경공업 부문에서는 방직공장 · 피복공장 · 견직공장 · 편직공장 · 양말공장 · 신발공장이 있으며, 식료품가공공장으로는 원산곡산공장과 원산맥주공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