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애노의 난 ()

고대사
사건
889년(진성여왕 3) 신라의 사벌주(沙伐州 :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에서 원종 · 애노가 일으킨 농민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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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889년(진성여왕 3) 신라의 사벌주(沙伐州 :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에서 원종 · 애노가 일으킨 농민 봉기.
개설

신라는 중대의 전성기를 지나 하대로 접어들면서 정치 · 사회적인 모순이 심화되어 갔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중앙 진골 귀족 간의 잦은 정쟁(政爭)으로 중앙 정부의 지방 통제력이 약화되었으며, 관(官)이나 귀족 및 사원의 토지 겸병 확대로 일반 농민들은 점차 토지로부터 유리되어 갔다.

국가 경제의 기반인 농민층이 분해된 반면, 사치와 향락의 풍조로 중앙 정부의 재정 수요는 점점 늘어만 갔다. 진성여왕 대에는 이러한 모순이 극도로 심화되었음에도 근본적인 개혁안을 마련하지 못하였다.

889년 지방의 주 · 군에서 세금을 바치지 않아 국고가 텅 비고 재정이 궁핍하게 되자, 중앙 정부는 사자를 파견해 오히려 조세를 독촉하였다.

이러한 조세 부담은 피지배층인 일반 농민에게 그대로 전가되었으며, 이에 저항하는 농민 봉기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대표적인 농민 봉기가 바로 사벌주를 근거로 해 일어난 원종과 애노의 난이다.

경과

중앙 정부는 이 난을 진압하고자 나마(奈麻) 영기(令奇)를 파견했으나 오히려 농민군의 세력에 눌려 공격조차 못하였으며, 촌주(村主) 우련(祐連)이 전사하였다.

이 일로 영기는 처형되었으며, 10세 정도인 우련의 아들이 촌주를 계승하게 되었다. 이 때 반란군이 진압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다른 반란군의 무리나 지방 세력에 의해 흡수, 통합되었거나 또는 거세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이 난은 중앙 정부와 지방 토호 세력에 저항하며 일어난 신라 하대의 농민 봉기로서는 선구자적 의의를 지니며, 이후 지방 세력의 형성과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신라 고대국가를 붕괴시키는 기폭제 구실을 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신라(新羅) 하대사회(下代社會)의 동요(動搖)」(최병헌, 『한국사』3, 국사편찬위원회, 1978)
「후삼국(後三國)의 성립(成立)」(박한설, 『한국사』3, 국사편찬위원회,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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