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의 전신이다. 원시 공동체 사회 이후 신라에는 연령별 청소년 단체가 있었다. 촌락 또는 씨족 단위로 조직된 이 단체를 통해 청소년들은 사회의 전통적 가치와 질서를 익히고 예절과 무술을 연마하였다.
청소년 단체는 교육 기관일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사회 구조를 유지시키는 기본적 사회 단체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신라가 주변의 소국들을 차례로 정복해 마침내 6세기 전반 무렵 경상도 일원을 차지하는 고대국가로 성장하고 문물 제도를 정비하게 되자,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의 양성과 선발이 필요해졌다.
또한 삼국간의 항쟁이 격화되면서 그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에 576년(진흥왕 37) 봄에 종래의 청소년 단체를 새롭게 확대, 개편한 것이 바로 원화이다. 그 무리는 300∼400명이었으며, 단체의 장인 원화에는 아름답고 어여쁜 여염집 처녀를 임명하였고, 효도·우애·충성·신의를 가르쳐 나라를 다스리는 커다란 방편으로 삼았다.
처음에 원화에 임명된 사람은 남모(南毛)와 준정(俊貞 또는 嬌貞) 두 사람이었는데, 남모를 질투한 준정이 그를 자기 집으로 유인해 억지로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다음 가만히 끌어 내 북쪽 개천에 버리고 돌로 묻어 죽였다.
남모의 무리들은 없어진 남모를 찾아다녔고,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자가 노래를 지어 아이들로 하여금 거리에서 부르도록 하였다. 노래를 들은 남모의 무리들은 그의 시체를 찾아 냈으며, 준정은 사형당하였다. 이 사건으로 원화는 폐지되었으며, 몇 년 후 화랑이 설치되어 그 역할을 계승하였다.
단체의 장인 원화에 여성을 임명한 것은, 종교적 의례에서 여성이 차지했던 지위를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흥왕 대에 개편된 청소년 단체에도 여전히 종교적 역할의 수행이 요청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신라 중고기에 관료 제도가 정비되고 삼국간의 항쟁이 격화되면서 남성들의 역할과 임무가 중시됨에 따라 원화제가 화랑제로 개편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