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천꾼 (꾼)

목차
사회구조
개념
내[川]와 여울을 건너려는 사람을 업어서 건네주던 직업인.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내[川]와 여울을 건너려는 사람을 업어서 건네주던 직업인.
내용

전통사회에서 있었던 일종의 직업인으로서 이러한 월천꾼이 언제 나타났다가 언제 없어졌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조선시대에는 매우 흔하였다. 이들에게는 홍수가 나는 때가 대목이었다.

월천꾼이 등장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의 옛 길이 많은 내나 여울을 건너야 하였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나루나 포구라면 거룻배가 있어서 쉽게 건널 수 있었지만 내나 여울은 신을 벗고 건너야 하였다.

그러나 당시 양반이나 부인들은 신을 벗기 곤란하였으므로 자기의 하인이 없을 경우, 직업적인 월천꾼에 업혀서 건널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내행(內行)일 경우 남자들에게 맨 발을 보이는 것은 금기였다. ‘발을 보인다.’라는 말은 여인이 곁을 허락한다는 뜻으로도 통하였으므로 유방을 내보이는 일보다 더 금기시되었다.

따라서, 신을 벗고 맨발로 건너는 일은 거의 삼갔다. 내나 여울목에는 두서너 사람의 월천꾼이 기다리다가 이렇게 신을 벗기 곤란한 사람들을 업어서 건네 주고는 품삯을 받았는데 대개는 허우대가 장대한 근처 마을의 장정들이었다.

‘월천꾼에 난장이 빠지듯’ 하는 속담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키가 작거나 체격이 왜소한 사람들은 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