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직보(直甫). 감사 유색(柳穡)의 후손이며, 유세안(柳世顔)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유완(柳完)이고, 아버지는 수찬(修撰) 유겸명(柳謙明)이다. 어머니는 이인함(李仁涵)의 딸이다. 이재(李縡)의 문인이다.
1753년(영조 2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주서(注書)를 거쳐 1756년에는 지평이 되었다. 이때 박세채(朴世采)를 문묘에 배향하자는 의논에 반대하다가 삭직당하였다. 영조 말년 경에 이조좌랑으로 다시 진출하였다. 1776년에 정조가 즉위하자 부수찬으로 다시 등용되고, 이어 동부승지·안동부사·병조참의를 거쳤으며, 대사성·이조참의·형조참판·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한때 파직을 당하였다가 다시 강계부사에 복직되어 인삼공출의 부정을 시정하기도 하였다. 그뒤에 안변부사에 전직되었다. 1780년(정조 4)에 홍국영(洪國榮)이 실각하자, 이명제(李明濟) 등으로부터 홍국영·송덕상(宋德相)의 일파라는 무고를 받아 또다시 파직되었다.
1788년에 특지가 되고 이어 형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793년에 지중추부사로 기로소에 들어가고 공조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효간(孝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