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일(汝一), 호는 산암(散庵). 유충원(柳忠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호(柳浩)이다. 아버지는 찰방 유천근(柳天根)이며, 어머니는 정지승(鄭之升)의 딸이다.
1632년(인조 10)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지제교(知製敎)가 되어 왕의 교서(敎書) 등을 기초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1644년 단천군수로 있으면서 소송을 간결히 처리하고 민생을 잘 보살펴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에 왕이 하사하는 옷의 겉감과 안감[表裏]을 받기도 하였다.
1650년(효종 1) 이후 정언과 장령, 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1655년 문신 정시(文臣庭試)에서 1등을 차지한 뒤 동부승지에 임명되었다. 다시 조정에서 인정을 받아 우승지에 이르렀다. 시에도 명망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