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우부빈객,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왕세제의 대리청정이 실현되자, 소론의 영수로서 왕이 병을 앓지 않은데도 대리청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극간해 철회시키고 노론을 실각시켰다. 1722년 우부빈객(右副賓客)이 되고, 다음 해 이조판서로 승진하였다.
1725년 영조가 즉위한 뒤 탕평책으로 노론 · 소론의 연립 정권이 수립될 때 우의정이 되고, 이어 소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 좌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신임옥사를 일으킨 주동자라는 노론의 집요한 공격을 받고 이듬해 면직되었다. 이 해 다시 이봉익(李鳳翼) · 민진원(閔鎭遠) 등의 논척으로 경흥에 안치되었다.
1727년 4월 20일 유배지에서 죽었다. 이 해 7월 3일 영조의 특지로 관작이 추복되었다. 그러나 1755년(영조 31) 3월 2일 반역죄로 몰려 다시 관작이 추탈되었다. 1908년(순종 2) 4월 거듭 복권되었다.
일찍이 1710년(숙종 36) 당시 양민에게 큰 부담이던 군포(軍布)의 폐단의 시정을 건의한 바 있다. 이광좌(李光佐)와 다르게 소론에서도 과격파에 속하여 노론의 탄압에 적극적이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약파만록(藥坡漫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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