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태로(台老). 유형(柳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수군절도사 유효걸(柳孝傑)이다. 아버지는 인천부사 유호연(柳浩然)이며, 어머니는 김수종(金守宗)의 딸이다.
1654년(효종 5) 사마시에 합격한 뒤, 1663년(현종 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70년 안주판관을 거쳐 1673년 봉산군수가 되었다. 그밖에도 외직으로는 남양현감·장연부사·성주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77년(숙종 3) 언관으로, 정언을 시작으로 장령(掌令)을 일년 동안 역임한 뒤 이듬해는 다시 정언(正言)이 되었다. 이해 정언으로서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지방의 수령들의 현부(賢否)를 살피고 돌아온 뒤 장령이 되었다.
이어 다시 1679년 정언을 거쳐 장령이 다시 되어 언론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언관 생활 동안 누구나 그러하듯이 반대파의 많은 모함과 탄핵을 받았다. 그 뒤 1680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으나 이해 경신대출척으로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주로 관직생활은 언관활동을 하는 사헌부·사간원에서 보냈으며, 이밖에도 사성·태복시정(太僕寺正)·종부시정(宗簿寺正)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