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노택(魯澤). 아버지는 지중추원사 유은지(柳殷之)이다.
1435년(세종 17) 세자익위사좌시직(世子翊衛司左侍直)이 되고 뒤에 내금위(內禁衛)에 보직되었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首陽大君)이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 원로대신을 제거하는 계유정난 당시에 한명회(韓明澮)의 추천으로 거사 행동책으로 기용되어 가담, 협력한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2등이 되고 문성군(文城君)에 봉하여졌다. 1455년(세조 1)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가 되고, 얼마 뒤 호조참의에 전임되었다. 이듬해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457년 인순부윤(仁順府尹)이 되고, 호조·공조·형조의 참판을 거쳐 이듬해 성절사 겸 천추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9년 동지중추원사와 전라도도절제사를 역임하고, 1461년 좌참찬이 되었다. 이듬해 함길도도순찰사가 되었고, 1469년(예종 1) 다시 문성군에 봉해졌다.
1471년(성종 2) 성종의 즉위를 보좌한 공으로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이 되었다. 학식도 없고 책략도 없었으나, 무술로 세조의 계유정난에 가담, 협력하여 공신이 되었다. 시호는 안양(安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