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심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예조참판, 강화유수,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도계(道溪)
  • 징보(澄甫)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667년(현종 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예조참판|강화유수|도승지
  • 출생 연도1608년(선조 4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오성 (세종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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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참판, 강화유수,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징보(澄甫), 호는 도계(道溪). 유영경(柳永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열(柳悅)이다. 아버지는 전창위(全昌尉) 유정량(柳廷亮)이며, 어머니는 선조의 딸 정휘옹주(貞徽翁主)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로 가산이 적몰되고 유배당한 아버지를 따라 호남에 있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왔다. 1627년(인조 5)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음보(蔭補)로 참봉이 되고, 시직(侍直)으로 1635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에 등용되었다.

1638년 동지겸성절사(冬至兼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1651년(효종 2) 경상도관찰사로 나아갔으며, 1656년에도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659년(현종 즉위년) 예조참판으로 고부 겸 주청사(告訃兼奏請使)의 부사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온 뒤 강화유수가 되었으며, 1662년에는 도승지를 역임하였다.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송설체(松雪體)에 능하였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설봉집(雪峯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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