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장산 ()

목차
영화
인물
해방 이후 「나는 간다」, 「해방뉴스」, 「나는 간다」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 영화촬영기사.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5년
사망 연도
1981년
출생지
서울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해방 이후 「나는 간다」, 「해방뉴스」, 「나는 간다」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 영화촬영기사.
내용

서울 출신. 보통학교를 나온 뒤 곧 경성촬영소(京城撮影所)에 입사하여 촬영기사 이명우(李明雨)와 양세웅(梁世雄)에게서 영화촬영기술을 배웠다.

1940년 문화영화 「청명심(淸明心)」과 「산촌(山村)의 여명(黎明)」(조선문화영화협회 제작)을 촬영, 편집, 현상하여 기사로서 데뷔하였다. 극영화로서는 박기채(朴基采)가 감독한 「나는 간다」(1942)에서 첫 촬영을 맡았다.

1945년 광복 직후에는 윤백남(尹白南)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선영화건설본부의 일원으로서 「해방뉴스」 등을 촬영하여 활약이 컸다.

1947년 보스턴마라톤제패의 기록영화 「패자(覇者)의 수도(修道)」를 만들었으며, 6·25사변 중에는 종군촬영기사로 활약하였고, 휴전 후에는 서울의 복구의 모습을 담은 「빛나는 건설」(1954)을 만들었다.

극영화활동은 김성민(金聖珉) 감독의 「망나니 비사(悲史)」(1955), 양주남(梁柱南) 감독의 「배뱅이굿」(1957), 「종각(鐘閣)」(1958), 이규환(李圭煥) 감독의 「애련의 꽃송이」(1959) 등 예술적 향기가 높은 작품의 촬영기사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발성기 이후의 우리 영화 발전에 이바지한 중진촬영기사 중 한 사람이다.

참고문헌

『한국영화전사(韓國映畵全史)』(이영일, 삼애사, 1969)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