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수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사헌부감찰, 탁지아문참의, 한성판윤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칭
이칭
뇌원(雷園)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57년(철종 8) 4월 11일
사망 연도
1938년 4월 17일
본관
전주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사헌부감찰, 탁지아문참의, 한성판윤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생애 및 활동사항

1857년 4월생으로, 호는 뇌원(雷園)이다. 1883년 전환국사사(典圜局司事), 1884년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다. 같은 해 탁지아문참의(度支衙門參議)와 한성판윤(漢城判尹)이 되었다.

1895년 탁지부참서관(度支部參書官)과 회계국장(會計局長), 사계국장(司計局長) 등을 거쳐 1897년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1901년 양지아문기사원(量地衙門記事員), 1903년 중앙은행창설위원(中央銀行創設委員), 1904년 탁지부협판(度支部協辦)에 올랐다.

1905년 문관전고위원장(文官銓考委員長)과 금고관리장(金庫管理長), 1906년 검사국장(檢査局長)과 건축소장(建築所長)을 겸임하였고, 지방관전고위원(地方官銓考委員)과 지방세조사위원(地方稅調査委員), 1907년 탁지부차관(度支部次官),1908년 회계검사국차장(會計檢査局次長) 등으로 활동하였다.

한일강제병합 후인 1910년 10월 조선총독 자문기구 중추원(中樞院)에 찬의(贊議)로 임명되어 활동하며, 1921년 4월까지 재임하였다. 1912년 8월 한국병합기념장(韓國倂合記念章)을 받기도 하였다. 1916년 1월 『조선반도사(朝鮮半島史)』 편찬사업과 8월 고적조사위원회(古蹟調査委員會)에 참여하였다.

1917년 2월 불교옹호회(佛敎擁護會) 고문이 되었고, 1921년 4월 조선총독부 중추원 관제 개정으로 칙임관(勅任官) 대우 중추원 참의를 다섯 번 연임하였다. 1926년 11월 훈3등 서보장(瑞寶章)을, 1928년 11월 쇼와천황즉위기념대례기념장[昭和天皇卽位記念大禮記念章]을 받았다.

1929년 5월 조선박람회(朝鮮博覽會) 평의원, 1933년 12월 조선총독부 보물고적명승기념물보존회(寶物古蹟名勝記念物保存會)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35년 10월 조선총독부 시정25주년 기념표창을 받았다. 1938년 1월 경학원(經學院) 대제학(大提學)과 명륜학원(明倫學院) 총재를 겸직하였으며, 같은 해 사망하였다.

유정수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제2조 제9·17·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0: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709~718)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대한제국관원이력서(大韓帝國官員履歷書)』
『조선총독부관보(朝鮮總督府官報)』
『친일인명사전』2(민족문제연구소, 2009)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0: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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