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룡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 등을 역임한 정치인. 경제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0년(고종 17) 10월 16일
사망 연도
1947년 10월 30일
본관
청주(淸州)
출생지
서울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 등을 역임한 정치인. 경제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생애 및 활동사항

1880년 10월 16일 서울 출생으로,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1896년 관립 영어학교(英語學校)에서 수학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899년 사립 세이조학교[成城學校] 보통과 3학년으로 편입하였으나 1900년 11월 중퇴하였다.

1901년 사립 중교의숙(中橋義塾)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였으며, 1902년 7월 외부(外部) 참서관(參書官)에 임명되었다. 1903년 12월 한성은행(漢城銀行) 우총무(右總務)에 임명되었고, 1905년 10월 취체역 겸 총무부장에 선임되었다.

1908년 6월 한성실업협회(漢城實業協會) 상의원(常議員), 9월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 설립위원, 12월 이사 겸 조사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09년 11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장례식에 관민추도회(官民追悼會)의 일원으로 참석하였으며,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한성은행의 전무취체역(專務取締役)에 선임되었다.

1914년 경성부 부협의회 의원, 같은 해 10월 시정5주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 평의원에 임명되었다. 1915년 1월 조선물산공진회 협찬회(協賛會) 평의원과 상의원으로 선임되었고, 7월 일본적십자사 조선총본부 협찬위원, 8월 경성 임시위생위원회 위원, 10월 조선중앙농회 평의원, 12월 경성상업회의소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16년 11월 동양척식주식회사 고문, 12월 대정친목회(大正親睦會)의 발기인으로 참여해 평의원장에 선임되었다. 1917년 6월 이완용(李完用)을 회장으로 하는 불교옹호회(佛敎擁護會) 평의원이 되었으며, 1918년 6월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의 창립위원에 임명되었다.

1920년 3월 조선인 실업가들의 친목단체인 조선실업구락부(朝鮮實業俱樂部)를 창립하고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같은 해 12월 경기도 관선 도평의회원으로 임명되었고, 1924년 2월 훈3등 서보장(瑞寶章)을 받았다. 1927년 6월 조선총독부 중추원(中樞院) 참의(參議)로 임명되어 1941년 5월까지 네 차례 연임하였다.

1934년 12월 조선국방비행기헌납회(朝鮮國防飛行機獻納會) 고문에 추대되었고, 1935년 10월 조선총독부 시정20주년 기념식에서 경제계에 기여한 공로로 표창을 받았다.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1937년 7월 경성일보사(京城日報社) 주최 시국강연회에서 ‘시국 하 반도인의 임무’란 주제로 강연을 하였으며, 9월 조선총독부 학무국 주최 시국강연회 강사로 함경남도에서 강연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조선군사령부를 방문해 국방헌금을 헌납하였다.

1938년 1월 육군특별지원병제도에 관해 환영 담화를 발표하고, 3월 경기도 방공위원회(防空委員會) 위원, 7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國民精神總動員朝鮮聯盟) 이사, 국민정신총동원 경기도연맹 참여(參與)로 위촉되었다.

1940년 조선방송협회(朝鮮放送協會) 방송심의회 위원으로 위촉되었고, 1941년 9월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에 발기인으로 참여해 고문이 되었다. 같은 해 12월 조선방송협회 상무이사에 선임되었다. 조선인에 대한 징병제 실시가 결정되자 1942년 5월 10일자 『매일신보』를 통해 ‘광영의 사명을 완수하자’라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1943년 9월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 참여에 임명되었고, 11월 사무국 총장에 취임하였다. 1944년 2월 조선중요물자영단(朝鮮重要物資營團) 평의원, 9월 국민동원총진회(國民動員總進會) 고문을 지냈다. 1945년 2월 훈2등 서보장을 받았다.

광복 직전인 1945년 7월 전시동원단체 조선국민의용대(朝鮮國民義勇隊)의 고문으로 활동하였으며, 1947년 10월 30일 사망하였다.

한상룡의 일제시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제2조 제8·9·11·13·17·18·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8: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753~899)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韓相龍を語る』(韓翼敬, 韓相龍氏還曆記念會, 1941)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8: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친일반민족행위자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친일인명사전』3(민족문제연구소, 2009)
『한상룡을 말한다』(한익교, 혜안, 2007)
「한말·일제하 한상룡의 기업활동 연구」(김명수, 『연세경제연구』7-2, 2000)
「한상룡: 친일 예속자본가의 전형」(김경일, 『한국학보』19-2, 1993)
「친일인물 한상룡」(김민철, 『민족문제연구』1,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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