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한성부좌윤, 공조판서, 오위도총부도총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37년 사헌부감찰이 되고 이어 병조좌랑 겸 춘추관기사관이 되었고, 시강원사서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1538년 사간원정언을 거쳐 사헌부지평·시강원문학·홍문관교리·응교·장령·집의 등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였다.
1543년 부제학에 올랐고, 이듬해 승정원동부승지·우승지, 1546년 좌승지·도승지를 차례로 거쳤다. 1548년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공조참판, 이듬해 전라도관찰사를 지내고, 1550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경기도·평안도 관찰사를 지냈고 1554년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으나, 이 때 경연(經筵)에서 『주역』을 진강하게 되어 『주역』에 밝은 자를 고르게 됨으로써 다시 기용되었다.
이어서 한성부좌윤·함경도관찰사를 거쳐 공조판서에 오르고, 1559년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겸직하던 중 중풍을 얻어 사직을 청하니 왕이 공조판서를 바꾸고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로 임명하였는데, “일을 하지 않는데 어찌 그 녹(祿)을 먹을 수 있는가?” 하며 받기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문사(文詞)에 뛰어났고, 죽화(竹畫)를 잘 그렸다. 글씨에도 뛰어나 남대문의 ‘숭례문(崇禮門)’을 썼다는 설도 있다. 시호는 정민(貞敏)이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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