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인가(仁可). 합천 출신. 증조는 유자미(柳自湄)이고, 할아버지는 유수원(柳洙元)이다. 아버지는 유경해(柳景海)이다. 정인홍(鄭仁弘)의 생질이다.
1603년(선조 36) 사마시에 합격하여, 1617년(광해군 9) 유생들과 함께 조식(曺植)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청하는 소를 여러 번 올렸다. 다음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의 검열·대교, 세자시강원설서, 예문관의 봉교·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1618년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에 찬성하였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관직을 삭출(削黜)당하여 강원도 금성에 유배되었다.
1628년(인조 6) 아들 유지욱(柳之煜)이 유효립(柳孝立)과 함께 대북파와 제휴하여 광해군을 상왕으로 삼고 선조의 다섯째 아들 인성군 이공(仁城君 李珙)을 추대하려는 역모죄로 처형될 때, 유진정도 교수형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