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예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대숙(大叔). 유정(兪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여해(兪汝諧)이다. 아버지는 현감 유근(兪瑾)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80년(숙종 6) 진사로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지평(持平)이 되었고, 1694년 김시걸(金時傑)·이인병(李寅炳)·유상재(柳尙載) 등과 함께 양사에 제수되었으며, 이어 장령(掌令)이 되었다. 남인에서 서인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갑술환국이 전개될 때 장령으로 재직하면서 지평 김시걸 등과 함께 옥사를 제대로 다스릴 것을 요청하였다.
또한, 위접관(慰接官)으로 대마도에 가서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였고, 1696년 승지에 임명되었다. 그 뒤 부사직·경상도관찰사·황해도관찰사·대사간 등을 거쳐, 1705년 예조참판이 되었다. 1718년 형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공조판서를 지내고, 1720년 숙종이 죽자 산릉도감제조(山陵都監提調)를 지낸 뒤 기로소에 들어갔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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