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래(洪景來)의 난의 가담자이다. 평안도 영유 출신. 본래 무뢰한으로서 승려 또는 암행어사를 가칭하며 경향 각지를 배회하다가 잡혀 백령진(白翎鎭)에 충군(充軍)되었다.
뒤에 풀려나와 1811년 홍경래의 난 때 홍경래의 참모 김사용(金士用)을 영유에서 만나 포섭되어, 정보수집을 하기 위하여 서울에 잠입, 남대문과 장용영(壯勇營)에 불온문서를 붙여 민심을 선동하기도 하였고, 선천에 가서 관군의 기밀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이어 다시 서울에 잠입하였다가 체포되어 1812년 2월 군문효수(軍門梟首)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