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참의, 부승지,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36년 정언으로 재직 중 후금에서 청으로 국호를 고친 청 태조의 건국 축하에 참석했던 나덕헌(羅德憲) 등이 돌아오자, 이들을 참(斬)해 대의를 밝힐 것과 청의 국서(國書)를 받지 말 것, 팔도에 사신을 보내어 전쟁에 대비할 것 등 반청주전론(反淸主戰論)을 주장하였다.
이어 다시 전적으로 체직되었다가 병조좌랑을 거쳐 지평에 보임되었다. 그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비·빈과 봉림대군을 강화에 호종했고, 곧 호서순검사(湖西巡檢使)가 되어 전라도 지역에서 군사 모집과 군량 조달을 위해 활약하였다.
난이 끝난 뒤에는 배청파(排淸派)로 지목되어 단양에 유배되었다가 풀려 나와 향리(鄕里)에 은거했으며, 1640년 다시 예조정랑에 기용되었다. 2년 뒤 교리로 재임 중 전국에 전염병이 만연해 많은 백성들이 죽자, 지방의 신(神)에게 기도하기 위해 영남 지방을 다녀와서 시사육조(時事六條)를 임금에게 올려 받아들여졌다.
그 뒤 헌납·이조참의 겸 시강원문학을 거쳐 병조참의·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648년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승지로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공조참의에 임명되었다. 철저한 배청숭명파 노선을 걸었고, 호란이 끝난 뒤에도 참상을 잊지 말 것을 역설하였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송자대전(宋子大全)』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