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용경(龍卿), 호는 제교(霽嶠)·봉음(峯陰). 유수천(柳守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조판서 유잠(柳潛)이다. 아버지는 국구(國舅) 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 유자신(柳自新)이며, 어머니는 좌의정 정유길(鄭惟吉)의 딸이다.
1603년(선조 36)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608년(광해군 즉위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을 거쳐 설서·정언·전한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 이조정랑·교리·수찬을 역임하였고, 지평·사인을 거쳐 직제학에 이르렀다. 1610년 분승지(分承旨)·사복시정(司僕寺正)을 역임하고 예조참판이 되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집안이 주살 또는 유배될 때 유희량도 거제도에 유배되었다. 1628년 귀양가 있던 아들 유두립(柳斗立)과 조카 유효립(柳孝立)의 모역사건에 연좌되어 유배지에서 교살되었다. 글씨를 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