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신백(信伯), 호는 신곡(薪谷). 지중추부사 윤우신(尹又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교리 윤섬(尹暹)이다. 아버지는 현감 윤형갑(尹衡甲)이며, 어머니는 창원황씨(昌原黃氏)로 관찰사 황치경(黃致敬)의 딸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상소하여 척화를 주장하였다. 이 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문원권지부정자를 거쳐 전적·홍문관교리를 지냈다. 1629년 이조좌랑이 되었고, 1636년(인조 14)에 남양부사가 되었다.
1636년(인조 14)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근왕병(勤王兵)을 모집하여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려다 청병에게 잡혔으나, 굴하지 않고 대항하다가 몸에 난도질을 당하여 죽었다. 뒤에 이초참판에 추증되어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