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안(咸安). 별명은 기묘(起畝). 윤희(尹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득룡(尹得龍)이다. 아버지는 윤응(尹應)이며, 성종의 폐비인 윤씨의 아버지이다.
1439년(세종 21) 생원으로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452년(문종 2) 집현전부교리로서 춘추관기주관을 겸직하면서 『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에 완성된 『고려사절요』의 편찬에도 김종서(金宗瑞)의 지휘를 받아 참여하였다.
이어 지평을 역임하면서 단종대에 언론활동을 하였으며, 관직은 판봉상시사(判奉常寺事)에 이르렀다. 죽은 뒤인 1473년(성종 4) 딸이 숙의(淑儀)로 봉하여지고 뒤의 연산군을 낳았으므로 연산군 때 부원군(府院君)에 추봉되고 영의정을 추증받았다. 그러나 1506년 중종반정으로 삭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