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이조판서, 진주부사,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62년 충청도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이산(離散)하므로, 호서안집사(湖西安集使)가 되어 흩어진 농민들을 안집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 뒤 대사헌 · 이조참판 ·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1771년 진주부사(陳奏副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공조판서 · 평안도관찰사 · 우참찬을 거쳐 1790년(정조 14) 판의금부사에 이어 판중추부사로 치사하였다. 서예에 능하여 80세가 넘어서도 궁중의 서사(書寫)를 맡아 정조로부터 필력(筆力)이 유건(愈健)하다는 칭송을 받았다.
「달천사비(達川祠碑)」 · 「적전사기적비(赤田社紀蹟碑)」 · 「적지기적비(蹟池紀蹟碑)」 · 「임경업충렬사비(林慶業忠烈祠碑)」 등 당시의 금석문은 윤동섬의 손으로 쓰인 것이 많았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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