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은 1807년 태어났으며, 증조부 강세황의 예술적 기질을 이어받아 산수화와 시(詩), 초서(草書) · 예서(隷書) 등 글씨에도 뛰어나 시 · 서 · 화의 삼절로 일컬어졌다.
1833년(순조 33) 가을 진향정사(進香正使) 이지연(李止淵)의 수행원으로 청나라 연경(燕行)을 다녀오면서 37제(題)의 시문을 지었고, 1837년(헌종 3)에는 남상교( 南尙敎), 신명준(申命準)과 함께 유서(柳絮) 시 5수를 지었다. 그해 6월 당대의 세도가이자 학자였던 조만영(趙萬永), 조인영(趙寅永)의 주선으로 규장각검서관(章閣檢書官)이 되었으며, 이덕무(李德懋), 박제가(朴齊家), 유득공(柳得恭)을 이을 만한 인물로 평가되었다.
1840년(헌종 6)에는 전라도 흥양(興陽)의 감목관(監牧官)이 되었으며, 1843년(헌종 9) 고금도(古今島)를 찾아가 유배 중인 이기연(李紀淵)을 위문하였으며, 그해 다시 규장각검서관으로 복직하였다. 이후 1847년(헌종 13) 강원도 안협현감(安峽縣監)이 되었으며, 1853년(철종 4) 안협현감에서 물러난 뒤, 1858년(철종 9) 죽었다.
저서로는 강진 사후 1868년(고종 5) 아들 강귀수(姜龜秀)와 강홍수(姜鴻秀)가 조영하(趙寧夏)의 도움을 받아 간행한 『대산집(對山集)』 4권 2책이 전한다. 권수에 조두순(趙斗淳), 윤정현(尹定鉉), 김학성(金學性), 홍순목(洪淳穆), 박승휘(朴承輝) 등 당대 명사들의 서문이 실려 있다. 권 1은 시 135제, 권 2는 시 183제, 권 3은 시 187제, 권 4는 시 97제 등 602수가 시기별로 실려 있다. 청나라 연경에 다녀왔을 때, 규장각검서관, 흥양감목관, 안협현감 재직 시에 지은 시를 비롯해서 그와 친분이 두터웠던 인물들과 주고 받은 시가 많다.
특히 강진은 금강산을 세 차례나 유람하면서 많은 시를 남겼다. 첫 번째는 1842년(헌종 8) 가을 오대산 사고(史庫)의 포쇄(曝曬) 임무를 띠고 간 조만영을 수행하여 금강산을 유람할 때 지은 시를 4권으로 정리하였다. 두 번째는 1843년(헌종 9) 가을 오대산 사고의 포쇄 임무를 띤 조병준(趙秉駿)을 수행하여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였는데, 이때 38제를 지었다. 세 번째는 1852년(철종 3) 강원도관찰사 이겸재( 李謙在)를 따라 유람하였는데, 11제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