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 규장각검서관, 안협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진여(進汝)
대산(對山)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07년(순조 7)
사망 연도
1858년(철종 9)
본관
진주(晉州)
출생지
서울
주요 저서
대산집(對山集)
주요 관직
규장각검서관|흥양감목관|안협현감
내용 요약

강진은 조선 후기 규장각검서관, 안협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시·서·화 삼절로 일컬어지는 강세황의 예술적 기질을 이어받았으며, 시에 뛰어나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의 뒤를 이은 인물로 평가되었다. 특히 강진은 금강산을 세 차례나 유람하면서 많은 시를 남겼다.

정의
조선 후기 규장각검서관, 안협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진여(進汝), 호는 대산(對山)이다. 강진의 5대조는 숙종 때 예조판서, 우참찬을 지낸 강백년(姜栢年)이며, 고조할아버지는 판의금부사로서 소론(少論)을 두둔하였던 강현(姜鋧), 증조할아버지는 정조 때 시 · 서 · 화 삼절(三絶)로 일컬어진 강세황(姜世晃), 할아버지는 승지를 지낸 강흔(姜俒)으로서 주1의 명문 가문이다. 아버지는 서자인 강이대(姜彝大)이며, 어머니는 한양조씨 조익상(趙益祥)의 딸이다.

주요 활동

강진은 1807년 태어났으며, 증조부 강세황의 예술적 기질을 이어받아 산수화와 시(詩), 초서(草書) · 예서(隷書) 등 글씨에도 뛰어나 시 · 서 · 화의 삼절로 일컬어졌다.

1833년(순조 33) 가을 진향정사(進香正使) 이지연(李止淵)의 수행원으로 청나라 연경(燕行)을 다녀오면서 37제(題)의 시문을 지었고, 1837년(헌종 3)에는 남상교( 南尙敎), 신명준(申命準)과 함께 주3 시 5수를 지었다. 그해 6월 당대의 세도가이자 학자였던 조만영(趙萬永), 조인영(趙寅永)의 주선으로 주2이 되었으며, 이덕무(李德懋), 박제가(朴齊家), 유득공(柳得恭)을 이을 만한 인물로 평가되었다.

1840년(헌종 6)에는 전라도 흥양(興陽)의 감목관(監牧官)이 되었으며, 1843년(헌종 9) 주4를 찾아가 유배 중인 이기연(李紀淵)을 위문하였으며, 그해 다시 규장각검서관으로 복직하였다. 이후 1847년(헌종 13) 강원도 안협현감(安峽縣監)이 되었으며, 1853년(철종 4) 안협현감에서 물러난 뒤, 1858년(철종 9) 죽었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는 강진 사후 1868년(고종 5) 아들 강귀수(姜龜秀)와 강홍수(姜鴻秀)가 조영하(趙寧夏)의 도움을 받아 간행한 『대산집(對山集)』 4권 2책이 전한다. 권수에 조두순(趙斗淳), 윤정현(尹定鉉), 김학성(金學性), 홍순목(洪淳穆), 박승휘(朴承輝) 등 당대 명사들의 서문이 실려 있다. 권 1은 시 135제, 권 2는 시 183제, 권 3은 시 187제, 권 4는 시 97제 등 602수가 시기별로 실려 있다. 청나라 연경에 다녀왔을 때, 규장각검서관, 흥양감목관, 안협현감 재직 시에 지은 시를 비롯해서 그와 친분이 두터웠던 인물들과 주고 받은 시가 많다.

특히 강진은 금강산을 세 차례나 유람하면서 많은 시를 남겼다. 첫 번째는 1842년(헌종 8) 가을 오대산 주6주5 임무를 띠고 간 조만영을 수행하여 금강산을 유람할 때 지은 시를 4권으로 정리하였다. 두 번째는 1843년(헌종 9) 가을 오대산 사고의 포쇄 임무를 띤 조병준(趙秉駿)을 수행하여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였는데, 이때 38제를 지었다. 세 번째는 1852년(철종 3) 강원도관찰사 이겸재( 李謙在)를 따라 유람하였는데, 11제를 지었다.

참고문헌

원전

『일사유사(逸士遺事)』
『철종실록(哲宗實錄)』

인터넷 자료

한국고전종합DB: 『대산집(對山集)』 해제(https://db.itkc.or.kr)
주석
주1

조선 시대에, 북인(北人) 가운데 유영경(柳永慶), 남이공(南以恭), 김신국(金藎國) 등을 중심으로 한 분파. 선조 때 북인인 홍여순(洪如淳)이 대사헌이 되려고 할 때 같은 북인인 남이공이 반대하면서 홍여순 파와 갈라졌다.    우리말샘

주2

조선 후기에, 규장각에 속하여 서적의 교정과 서사(書寫) 따위의 일을 맡아보던 벼슬.    우리말샘

주3

버드나무의 꽃.    우리말샘

주4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古今面)에 속하는 섬. 부근 어장은 산란장으로 적당하며, 제주 난류의 북상에 따라 난류성 어족이 풍부하고 굴ㆍ김 양식이 활발하다. 면적은 45.1㎢.    우리말샘

주5

젖거나 축축한 것을 바람에 쐬고 볕에 바램.    우리말샘

주6

조선 선조 39년(1606)에 강릉 오대산에 지은, 실록을 보관하던 서고(書庫).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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