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준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경범(景範)
  • 시호효정(孝貞)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양(豊壤)
  • 사망 연도1858년(철종 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판의금부사|경상도관찰사
  • 출생 연도1814년(순조 1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옥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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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경범(景範). 조엄(趙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진의(趙鎭宜)이고, 아버지는 조원영(趙原永)이며, 어머니는 한용구(韓用龜)의 딸이다.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의 종질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41년(헌종 7) 생원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48년 규장각직제학·개성유수를 거쳐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1850년(철종 1) 한성부판윤을 지내고, 다음해 수원부유수를 거쳐 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수원부유수 재직 때 그곳 사당 영정(影幀)들이 오래되었음을 보고 강릉본(江陵本)의 공자상(孔子像)을 본떠 안치하도록 하였다.

1852년 함경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854년 다시 한성부판윤이 되었고, 이듬해 공조판서·대사헌·행대호군·우참찬 등을 지냈다. 1856년 세번째로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이듬해 판의금부사·상호군을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참고문헌

  • - 『헌종실록(憲宗實錄)』

  • - 『철종실록(哲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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