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경범(景範). 조엄(趙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진의(趙鎭宜)이고, 아버지는 조원영(趙原永)이며, 어머니는 한용구(韓用龜)의 딸이다.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의 종질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41년(헌종 7) 생원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48년 규장각직제학·개성유수를 거쳐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1850년(철종 1) 한성부판윤을 지내고, 다음해 수원부유수를 거쳐 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수원부유수 재직 때 그곳 사당 영정(影幀)들이 오래되었음을 보고 강릉본(江陵本)의 공자상(孔子像)을 본떠 안치하도록 하였다.
1852년 함경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854년 다시 한성부판윤이 되었고, 이듬해 공조판서·대사헌·행대호군·우참찬 등을 지냈다. 1856년 세번째로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이듬해 판의금부사·상호군을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참고문헌
- 『헌종실록(憲宗實錄)』
- 『철종실록(哲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