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공북로(진북동) 19에 있다. 조선시대에 성의 장대(將臺)가 있던 곳으로 숲이 우거졌다 하여 ‘숲정이’ 또는 ‘숲머리’라 불렀고, 외지고 한적하여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이용되었는데, 1801년(순조 1) 신유박해로 이순이(李順伊)와 그의 가족이 사교를 신봉하였다 하여 이곳에서 참수를 당하였다.
이후 박해 때마다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즉 1839년(헌종 5)에는 북경을 왕래하면서 신부영입운동을 벌였던 신대보(申大甫)가 5인의 교인과 함께 처형되었고, 1866년(고종 3)에도 조화서 · 조윤호 · 이명서 · 정원지 · 정문호 · 손선지 · 한원서 등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그래서 천주교인들은 1935년에 이곳에 기념비를 세워 그들의 넋을 기리는 한편, 1960년에는 해성학교를 세웠는데, 이 학교가 해성중 · 고등학교이다. 해성중 · 고등학교는 1992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계룡산길 88로 이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