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못

  • 종교·철학
  • 유적
  • 조선 후기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 에 있는 천주교 순교사적지.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옥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갈매못성지 미디어 정보

갈매못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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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 에 있는 천주교 순교사적지.

내용

전래 초기에 천주교인들의 신앙 활동이 매우 활발하였던 내포(內浦)지방의 연못이다.

1866년의 병인박해 때, 조선 제5대 교구장이던 주교 다블뤼(Davelu)는 주교의 복사이자 회장인 황석두(黃錫斗)와 함께 당진에서 체포되었고, 이 소식을 듣고 신부 위앵(Huin)·오메트르(Aumaitre)도 자수하였다.

또한 장낙소(張樂韶)도 제천에서 체포되어 이들 모두는 의금부로 압송되어 심한 문초를 받은 뒤 사형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마침 고종의 혼인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던 관계로 서울에서 형을 집행하는 것이 문제가 되자 보령의 수영(水營)으로 옮겨져 처형되게 되었다.

수영에서는 갈매못을 처형장으로 정해 처형했으므로 이곳이 순교유적지가 된 것이다. 다섯 순교자의 유해 중에서 세 선교사들의 유해는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옮겨졌다가 1894년서울용산신학교를 거쳐 1900년서울명동성당의 지하실에 안치되었다.

참고문헌

  • - 『한국(韓國)의 성지(聖地)』(이충우, 분도출판사, 1975)

  • - 「한국(韓國)의순교성지(殉敎聖地)」(이원순, 『신학전망』57, 대건신학대학전망편집부,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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