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 초기에 천주교인들의 신앙 활동이 매우 활발하였던 내포(內浦)지방의 연못이다.
1866년의 병인박해 때, 조선 제5대 교구장이던 주교 다블뤼(Davelu)는 주교의 복사이자 회장인 황석두(黃錫斗)와 함께 당진에서 체포되었고, 이 소식을 듣고 신부 위앵(Huin)·오메트르(Aumaitre)도 자수하였다.
또한 장낙소(張樂韶)도 제천에서 체포되어 이들 모두는 의금부로 압송되어 심한 문초를 받은 뒤 사형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마침 고종의 혼인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던 관계로 서울에서 형을 집행하는 것이 문제가 되자 보령의 수영(水營)으로 옮겨져 처형되게 되었다.
수영에서는 갈매못을 처형장으로 정해 처형했으므로 이곳이 순교유적지가 된 것이다. 다섯 순교자의 유해 중에서 세 선교사들의 유해는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옮겨졌다가 1894년서울용산신학교를 거쳐 1900년서울명동성당의 지하실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