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상지(祥之). 아버지는 공조참판 윤옥(尹玉)이다.
순회 세자(順懷世子)의 빈인 덕빈(德嬪)의 서(庶)오라버니로 18세 때 내수사별좌(內需司別坐)에 발탁되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정혜 옹주(貞惠翁主)를 황해우도에 무사하게 모신 공으로 환도 뒤 사온서직장(司醞署直長)이 되었다.
1595년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에 올랐으나 서자 출신이라는 탄핵을 받아 파직된 뒤로는 관리에로의 진출은 단념하고, 여강(驪江)에서 낚시를 즐기다가 충청도에서 세월을 보냈다. 서자 윤기(尹錡)가 무뢰한으로 상인을 따라다니며 3년간 돌아오지 않고 도적에 연좌되어 투옥중, 윤백상이 아들과 함께 역모의 무고를 받아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우의정 심희수(沈喜壽)는 아들을 꾸짖는 문서가 주머니 속에 있다는 것과 윤백상이 덕빈과 동기간임을 광해군에게 역설하였다. 이에 죽음을 면하고, 구성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성품이 슬기롭고 민첩하였으며, 의학·음악·잡술에도 익숙하였고, 특히 말재주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