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생. 아버지는 윤치호(尹致昊)이며 어머니는 중국인이다. 1914년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주립대학 축산과를 다니고 귀국하여 1950년 1월부터 12월까지 농림부장관을 역임하였다.
농림부장관에 취임할 당시 「농지개혁법」이 국회를 통과하였기 때문에 지주로부터 농지를 수매하고 그 토지를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따라 농민 소작인에게 분배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식량증산을 위하여 유휴지개발을 위한 실태조사를 하였고, 이와 더불어 유축농업 발전에도 역점을 두었다. 농림부장관을 그만둔 뒤 4H클럽활동에 전념하였는데, 4H클럽 중앙위원을 거쳐 중앙위원회 회장·고문으로 일하였다.
고려제약(高麗製藥)을 창설하여 사장에 취임하였으며, 퇴임 후에는 주로 사회봉사활동에 전념하였다. 1957∼1958년까지 서울로터리클럽 회장에 취임하여 한국로터리 재건에 지대한 공로를 남겼으며, 1958∼1959년까지 YMCA 총무를 역임하였다.
1960년 이후 보이스카우트활동에 전념하여 우리나라 청소년의 지도육성에 헌신하였으며, 대한적십자사 비서실장과 학교법인 송도학원(松都學園) 이사장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