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옥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동지돈녕부사, 공조참판, 동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자온(子蘊)
동리(東里)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11년(중종 6)
사망 연도
1584년(선조 17)
본관
무송(茂松,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
주요 관직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공조참판|동지중추원사
정의
조선 전기에, 동지돈녕부사, 공조참판, 동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자온(子蘊), 호는 동리(東里). 정언(正言) 윤미견(尹彌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원군수(寧遠郡守) 윤징(尹澂)이다. 아버지는 판서 윤사익(尹思翼)이며, 어머니는 동래정씨(東來鄭氏)로 정세걸(鄭世傑)의 딸이다. 김안국(金安國)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31년(중종 26) 사마시에 합격하고 154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곧 승문원에 들어갔다가 예문관검열 겸 춘추관기사관이 되었고, 이어서 예조·병조·형조의 좌랑, 사간원정언·성균관전적·홍문관수찬, 사헌부의 지평(持平)·헌납·장령, 홍문관의 전한·직제학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551년(명종 6)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올랐다.

이어서 좌승지를 거쳐 1553년 남양부사에 임명되어 외직으로 나갔는데, 그 뒤 양주목사·부평부사·해주목사 등을 역임하고 한성좌윤이 되어 중앙으로 돌아왔다.

딸이 순회세자(順懷世子)의 빈(嬪)이 됨으로써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가 되기도 하였으며, 공조참판·동지중추원사를 거쳐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의 부총관으로 재직하다가 죽었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파곡유고(坡谷遺稿)』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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