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곡산현감, 대구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임종(林宗). 호는 백봉(白篷). 자호(自號)는 송월정(松月亭)·소수주인(小睡主人)·풍월한인(風月閒人)·수운정(水雲亭)·매죽당(梅竹堂)·만봉(晩蓬). 아버지는 윤민(尹민)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 부윤(府尹) 이집(李楫)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윤근수(尹根壽)의 손자로 일찍 가학을 전수(傳授)받아 덕이 후하고 도량이 컸으며 사장(詞章)에 뛰어났다. 1618년(광해 10) 사마시에 합격하여 선배들의 추허(推許)한 바 되었으나 대과(大科)에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호란 때 난리를 만나 영남으로 피신, 유리(流離)생활을 하다가 효종 즉위년에 다시 음직(蔭職)에 발탁되어 곡산현감(谷山縣監)과 대구부사(大邱府使) 등을 역임했다. 시문(詩文)이 화려하였고 전고(典故)에 밝았다. 저서로는 『백봉유고(白篷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동현호보(東賢號譜)』
- 『백봉유고(白篷遺稿)』
- 『효종실록(孝宗實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