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한성좌윤, 병조참판, 동지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07년 수원부사로 재기용되어 남한산성 남격대(南格臺)의 축성에 관여하였고, 황해도순무사로 나갔다가 다시 포도대장이 되었다. 이 때 도성 안에서 괘서사건이 발생하여 그 범인을 색출하지 못한 책임으로 파직당하였다. 1712년 다시 총융사가 되었으며, 우포도대장을 거쳐 경종 즉위 후 한성좌윤·병조참판·동지의금부사를 지냈다.
조정 내에서 노론·소론의 대립이 치열해지면서 1722년(경종 2) 최홍(崔泓) 등이 세제(世弟) 연잉군(延礽君: 뒤의 영조)을 독살하려는 음모에 연루된 혐의를 받았으나 풀려나왔고, 형조판서에 올라 김일경(金一鏡)과 더불어 노론을 탄압, 축출하는 데 앞장섰다.
이로 인하여 1724년 영조 즉위 후 김일경의 일당으로 몰려 노론에 의하여 탄핵, 파직되었으며 국문을 받고 복주(伏誅)되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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