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방(宮房)에 토지를 직접 지급하는 대신에 민전(民田)에 대한 수조권을 준 무토궁방전(無土宮房田)의 형태이다. 민전의 소유자, 민결면세지(民結免稅地)가 설정되어 있는 곳의 관(官), 궁방의 이해관계가 상호 작용하여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궁방에 대한 부담을 여러 고을에 돌려가며 정하였던 데서 윤회결 또는 윤결(輪結)이라고 하였다. 한 지역의 부담은 본래 3년을 기한으로 하여 정해졌으며, 각 궁방에서 도장(導掌)을 파견하여 직접 세를 징수하였다. 그러나 정조 연간에 10년으로 그 기한을 늘리고 도장을 혁파하여 해당 고을에서 세를 거두어 호조에 상납하면 호조에서 궁방에 지급하도록 하였다. 윤회결에서의 세는 1결당 쌀로는 23두, 돈으로는 7냥 6전 7푼이었다. 그러나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점차 각 지역으로 옮겨 정해지지 않고 장기간 한 곳에 고정되어 가는 등 문제점이 발생하여 1894년(고종 31) 갑오농민전쟁 당시에 농민군이 그 혁파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 해의 부세 제도 개혁인 갑오승총(甲午陞摠)에 의하여 폐지되었다.
무토면세결의 규모는 18세기 후반부터 갑오승총 시기까지에 대해서만 확인된다. 1787년에는 2만 3천여 결, 1807년과 1814년에는 2만 6천여 결, 1824년에는 2만 3천여 결 수준으로 등락이 있었다. 1854년에는 다시 증가하여 2만 9천여 결이 되었고, 1860년에도 비슷한 수준인 2만 8천여 결이었다. 대원군의 개혁 이후에 대폭 감소하여, 1874년에는 2만여 결, 1880년에는 2만 1천여 결, 1884년에는 1만 9천여 결, 1895년에는 2만 1천여 결로서, 대략 2만 결 내외 수준에서 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