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오위도총부부총관, 예조참판,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1620년 무관직에 여러 번 임명되었으나, 병을 칭탁하고 당시 대북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1623년 인조반정 후 동지중추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 한성부의 좌윤·우윤 등을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인조를 공주에 호종하였으며, 그 뒤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왕을 강화로 호종(護從: 호위하여 따름.)하였으며, 적과의 강화를 강력히 배척하는 소를 올렸다.
1632·1635년에는 예조참판으로 재직하면서 인목대비(仁穆大妃)와 인열왕후(仁烈王后)의 국장업무에 참여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하였으며, 다음해 서울에 돌아와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저서로는 『계음만필(溪陰漫筆)』·『도재수필』·『도재집』 등이 있다. 시호는 정민(靖敏)이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학곡집(鶴谷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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