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수재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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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박해량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9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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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박해량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9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6권 3책. 목활자본. 1909년 아들 동원(東源)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기우만(奇宇萬)의 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58수, 권2에 서(書) 60편, 권3에 기(記) 1편, 발(跋) 2편, 설(說) 1편, 제문 4편, 행록(行錄) 1편, 권4에 일기 2편, 권5에 강설(講說) 2편, 권6에 부록으로 제문 4편, 행장 1편, 율수재기(聿修齋記)·율수재후서(聿修齋後序)·서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의 「문통신사영적이래발분구호(聞通信使迎賊而來發憤口呼)」는 1880년(고종 17) 김기수(金基洙)가 통신사로 일본에 가서 서양인을 맞이하여 칙사로 대접하고, 천주교를 전수한 일에 대하여 울분을 토로한 시이다.

「문동요(聞童謠)」는 최익현이 흑산도에 유배되었을 때 그곳 사람들이 그의 덕화(德化)에 감복된 것을 표현한 시이다. 「해상일기(海上日記)」는 최익현이 제주도와 흑산도에서 유배생활한 1873∼1876년간의 기록으로, 경서에 관한 토론과 시국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밖에 기정진과 문답한 「중용강설(中庸講說)」과 최익현과 문답한 「채산강설(茝山講說)」은 후학의 경전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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