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의 땅이었는데, 당나라의 영토가 된 뒤에는 오랫동안 황폐한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고려 초에는 흥덕진(興德鎭, 또는 同昌)이 설치되어 고려의 국경을 방어하는 군사기지가 되었다.
983년(성종 2)에 은주방어사(殷州防禦使)라고 하였으며, 1231년(고종 18)에는 몽고병이 침입하여 주민의 대부분이 바다로 피난을 갔다가 되돌아왔다. 1269년(원종 10)에 원나라는 이 곳을 동녕로(東寧路)의 관할에 두었다. 1278년(충렬왕 4)에 은산현(殷山縣)으로 복구하여 성주(成州 : 지금의 成川)에 귀속시켰다.
1391년(공양왕 3)에 감무를 설치하였고 1414년(태종 14)에 자산군(慈山郡)에 귀속시켰다가 다음해에 은산현으로 독립시켰다. 1895년(고종 32)에 군(郡)이 되었다가 뒤에 순천군에 병합시켰다. 조선시대 이전에 은산의 치소(治所)는 은산 북쪽의 진강산(鎭江山) 기슭에 있었다.
은곡의 지형은 서쪽에 대동강의 지류인 정융강(精戎江)이 남북으로 흐르고 진산(鎭山)인 진강산을 위시하여 천성산(天聖山)·숭화산(崇化山) 등에 에워싸인 산간분지이므로 외적의 침입을 별로 받지 않았고 조선시대 교통상의 요지였다.
자산·순천·강동·성천·개천·덕천 등지와 이어지는 도로가 발달하였으며, 성암진(城巖津)을 통하여 대동강 하류로 나갈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 이 곳에서 철이 생산되었다고 하나 그 위치는 불확실하다. 지금의 은산면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