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진송씨 정려각

  • 사회
  • 유적
  • 조선 후기
  • 시도문화유산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김경여의 어머니인 은진송씨의 정려각.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나각순 (서울시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4년 07월 05일
대전 은진송씨 정려각 정면 미디어 정보

대전 은진송씨 정려각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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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김경여의 어머니인 은진송씨의 정려각.

내용

1993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은진송씨의 지극한 효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영조 때 내린 정려기를 보호하기 위한 누각이다.

은진송씨는 임천군수를 지낸 송남수(宋柟壽)의 딸이며, 계림군 김정(金程)의 후손인 진사 김광유(金光裕)의 아내이다. 그녀는 회덕현 백달촌 중리에서 태어나 22세 때 결혼했으나 몇 달 만에 남편이 26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곧바로 남편을 따라 자결하려 하였으나, 당시 임신 중이어서 부친의 간곡한 만류로 죽지 못하고, 회덕 송촌에서 부모에 의지하여 유복자인 경여를 낳아 훌륭하게 키웠다.

경여는 효종 때의 문신으로 나랏일을 많이 한 충신이었다. 그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덕이었다고 한다.

또한, 송씨는 효성도 지극하였다. 부친이 노환으로 위독하게 되자 약지를 베어 피를 마시게 하고, 손가락뼈를 가루 내어 먹여 아버지를 소생케 함으로써 90수를 누리게 하였다. 또, 모친이 등창으로 위급해지자 역시 손가락을 잘라 가루 내어 아픈 곳에 발라서 병을 낫게 했다고 한다.

이러한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1729년(영조 5) 나라에서 정려[旌閭: 충신 · 효자 ·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던 고을에 세운 旌門]를 내렸다.

이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목조 기 3평이다. 4면을 홍살을 두르지 않았으며, 구조는 1벌대로 쌓은 장대석 기단 위에 낮은 방형 초석과 그 위에 다시 윗부분만 8각 단면으로 다듬은 방형 장초석을 2중으로 놓고 짧은 원기둥을 세웠다.

공포(拱包)는 출목이 없는 2익공(二翼工)으로 구성되었는데, 익공 상단에 연꽃이 장식되어 있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비교적 양호하며 사용된 부재가 굵고 구성되어 있는 공포가 조선 후기의 수법으로 당시 정려각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참고문헌

  • - 『회덕읍지(懷德邑誌)』

  • - 『대덕구지』(대덕구지편찬위원회, 1996)

  • - 『대전시사』4(대전직할시사편찬위원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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