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1축. 필사본. 이 공신녹권은 세로 35.3㎝의 저지(楮紙) 9장을 이어 붙인 총길이 604.9㎝의 두루마리이다.
여기에 주사란(朱絲欄)을 긋고 녹권 수급자의 성명 표시에 이어 공신들의 공신 사례, 공신 및 그 부모 · 처자 등에 대한 포상과 특전, 공신도감의 관직 · 성씨 · 수결의 차례로 묵서(墨書)되어 있다. 그리고 녹권의 첫머리와 접지 부분에 ‘이조지인(吏曹之印)’이 주인(朱印)되어 있다.
이 녹권에는 1등에 배극렴(裵克廉) 등 17명, 2등에 윤호(尹虎) 등 11명, 3등에 안경공(安景恭) 등 16명 총 44명이 책록되었는데, 이화는 1등공신 제6인에 기록되어 있다. 태조는 건국한 다음달인 1392년 8월 2일에 공신도감을 설치하고 개국공신에 대한 위차를 1·2·3등으로 세분하였다.
그리하여 1등은 좌명(佐命), 2등은 협찬(協贊), 3등은 익대(翊戴) 등의 훈호(勳號)를 매겨 녹권 등을 내려주는 한편, 등위에 따라 각종의 포상과 특전을 내렸다.
이 녹권의 수급자인 이화는 태조의 이복아우로 개국에 크게 기여하였다. 뒤에 1398년과 1400년(정종 2)의 1·2차 왕자의 난 때에도 수훈을 세워 정사공신(定社功臣)과 좌명공신(佐命功臣)에 각각 책록되기도 하였다.
조선이 건국한 이후 공신호는 1392년의 개국공신을 비롯해 공신의 마지막인 1728년(영조 4) 분무공신(奮武功臣)에 이르기까지 28회나 책록되었다. 그 인원 수는 약 1천 명이나 되며 원종공신(原從功臣)까지 합하면 그 인원 수는 그 몇 배나 된다.
이 공신녹권은 조선 왕조에서는 처음으로 발급된 것으로 개국공신녹권으로는 최초로 발견된 유일의 실물이다. 이는 조선 태조의 건국 동기 및 개국 주역의 공적 실상을 연구하는 데에 귀중한 사료이다.
뿐만 아니라, 건국 초에 설치, 운영된 공신도감의 연구와 이두의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연지동이종섭(李鍾燮)이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