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진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평소 효도가 극진하였는데, 이해 관직에 나가기 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어머니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하였다. 이듬해 강화도가 적에게 함락되자 자신은 적에게 잡히고 아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옆의 섬으로 피난하였다.
그 뒤 풀려나왔으나 아버지와 형제에게 글을 남겨 이별하고 여러 차례 적진에 들어가 어머니를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적에게 피살되었다. 아내 나씨도 이 소식을 듣고 상심한 끝에 죽었다. 인조의 명으로 효자정문이 세워졌으며, 1671년(현종 12) 승지 이단하(李端夏)의 건의로 수찬을 추증받았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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